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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Dec 23. 2023

모든 삶의 시작점

나는 재능 있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의 시작점을 상상한다.


언젠가부터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다. 악기 연주자, 작곡가, 화가, 소설가, 운동선수, 배관 수리공, 컴퓨터 수리 기사, 영화감독, 연출가, 건축가, 한 직종에서 오래 근무한 장기근속자 등등. 앞서 말한 것처럼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어느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노련한 전문가가 된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첫 시작을 상상한다.


가령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화려한 연주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처음으로 그 사람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계이름을 외우고 손가락 번호를 짚어가며 처음으로 연주곡 하나를 무사히 완주했을 순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유명한 작곡가나 영화감독을 보면 저 사람이 처음으로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순간은 언제일지, 언제부터 영화를 보며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연출과 촬영을 공부하기 시작했는지, 그런 사소한 출발선이 궁금하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십수 년을 일하신 분들을 볼 때도 종종 그렇다. 과연 처음으로 업무를 맡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주식회사의 어엿한 이사가 된 저들도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을까. 성질 더러운 상사를 만나 고생하고 신세를 한탄했을까. 아니면 나처럼 어쩌다 보니 이런 업종으로 흘러 들어와 그대로 뿌리를 내린 것일까. 초심을 잊어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초심보다 더 발전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애초에 초심이라고 할 만한 다짐이나 생각이 없었던 사람도 많을 테다. 그렇지만 딱히 유명하거나 최정상 자리에 오른 천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과 능력을 향한 넘볼 수 없는 애정이 눈동자에 일렁이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책임감과 열정은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니. 주입할 수 없는 감정은 오직 그 사람의 마음과 단전에서만 끌어올릴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하지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리가 없다. 빈센트 반 고흐가 처음으로 연필이나 수채화 물감을 들고 도화지에 선을 주욱 그렸을 순간을, 모차르트가 처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하나씩 눌러가며 계이름을 배웠을 순간을, 애덤 스미스가 처음으로 윤리철학과 경제학 교재의 첫 문장을 읽으며 배움을 시작했을 순간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시회를 갈 때마다 내 손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작품들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는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을까? 왜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조각품을 만들자고 다짐한 계기가 뭘까? 이런 쓸모없고 재미있는 상상들.


물론 그 궁금증은 그저 나의 상상으로만 끝날뿐이다. 그들의 자서전과 위인전을 모두 읽는다고 해도, 나는 결코 그들의 첫 시작점과 그 순간을 알지 못한다. 나 역시도 내가 처음으로 그린 그림, 처음으로 쓴 일기, 처음으로 찍은 사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림 보기를 좋아하고, ― 그리는 건 정말 죽어도 못 그리지만 ― 글쓰기를 하며 살고 있고 ― 그냥 평범한 일기와 엉망진창 수필과 습작 쓰기에 불과하지만 ― , 언젠가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 세상의 풍경과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찍을 수 있게 ―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초심이라는 건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기억처럼 잊어버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곁에 없으면 잠들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름도 생김새도 간신히 기억나는 애착 인형처럼.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 시작하고 싶다는 의지는 곧 하나의 삶이 챕터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말은 거창하지만 어쨌든 그동안 나에게 없었던 새로운 시간이 생겨나는 셈이니까.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글을 쓰는 나'가 태어나는 것이고, 주식 공부를 시작한다면 그동안 태어나지 않았던 '주식 시장을 기웃거리는 초보 개미인 나'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나는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 태어나지도 존재하지도 않고 그대로 사라지는 존재는 훨씬 많을 것이고.




모든 삶의 시작점은 흥미롭다. 어떠한 존재가 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순간, 어떠한 시간이 한 사람의 삶에서 시작되었을 순간이 궁금하다. 설령 그 사람이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때는 모든 시간과 열정을 불태울 정도로 사랑했었지만 지금은 설렘보다 편안함이나 더 나아가 권태를 느끼고 있다고 해도. 어쨌든 한 인간의 기나긴 여정을 새기는 책에 한 문장이라도 차지하는 시간이 존재했었다는 뜻이므로, 나는 그 모든 시작들이 궁금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글과 사진을 공모전에 출품하거나, 그동안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했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혼자 1박 2일로 국내 여행을 한 번 떠나보거나,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하고 실패를 맛보거나…. 그런 인생의 여행 같은 순간을 하나씩 만드는 것도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가끔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면 고등학교 동창생이 춤을 춘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데, 볼 때마다 멋있는 친구라고 느낀다. 같은 반이었을 때도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듣고 언행 하나하나에서 착한 사람이라는 게 물씬 느껴져서 존경스러울 정도였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그것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 친구도 언젠가, 춤을 추는 순간이 아주 즐겁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을 테지.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으니 수많은 시작도 함께 존재한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훗날 거대한 역사가 될 또 다른 순간이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상상하니 정말 그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게으른 천성에 밀려 계속 도전을 미루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 그건 바로 나다. 그러니 나를 포함한 모든 시작들에게 나 홀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머릿속에서만 존재하고 현실에 실행되지 못한 수많은 시작들에게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담아 애도의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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