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와 수필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이따금 생각하지만 역시나 답은 내려지지 않는 문제다. 매우 흡사하지만 결코 같다고는 말할 수 없는 무언가.
나는 에세이보다는 수필이 좋다. 산문집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단편 소설, 수필, 기행문 등 다양한 범주의 글을 모아서 엮은 책. 시, 소설, 수필, 일기, 편지, 보고서, 비평문, 관찰 일지 따위의 수많은 글이 모인 책을 상상한다. 비빔밥처럼 버무려지지 않고 김밥처럼 많은 재료가 각자의 경계를 두고 모여서 완전히 새로운 맛을 내는 것.
수필(隨筆)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며, 위트, 기지가 들어 있다.
- 네이버 국어사전 -
신기하게도 '에세이(essay)' 또한 사전적 의미가 같다. 경수필(輕隨筆)은 '생활주변에서일어나는사소한일을소재로가볍게쓴수필. 감성적 · 주관적 · 개인적 · 정서적특성을지니는신변잡기 ― 자신의주변에서일어나는여러가지일을적은수필체의글 ― 이다.'라고 사전에서 정의하고, 중수필(重隨筆)은 '주로무거운내용을담고있는논리적이고객관적인수필. 비개성적인것으로, 비평적수필 · 과학적수필따위가있다.'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그러니까 수필의 영어 단어가 에세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단어의 느낌은 똑같다고 말할 수 없다. 왠지 에세이라고 하면 경수필에 가깝고 수필이라고 하면 중수필에 가까운 품새랄까. 한국어보다 영어가 세련되었다고 해서 단칸방 대신 원룸이라고 부르고, 동사무소가 주민센터로 개명하고, 어떤 직업이든 컨설턴트나 스태프나 매니저라는 이름을 쓰고, 신축 아파트 이름에 드림파크나 그린빌이나 리버타운이나 파크뷰나 힐스테이트가 들어가지만, 그렇기에 되레 외국어나 외래어가 우리말보다 가벼워 보일 때도 있는 법.
다른 사람이 내게 요즘 무슨 책을 읽냐고 하면 에세이보다는 수필이나 산문을 읽는다고 말한다. 독서에 흥미 없는 사람은 그게 무엇이냐고 묻기도 한다. 사실 설명하기는 애매하다. 그래서 다시 에세이라고 말하면 그게 무엇이냐고 물은 사람은 그제야 이해한다. 수필과 산문이라는 말을 좋아하면서 정작 그것의 설명을 에세이라고 하는 모순이라니. 괜히 있어 보이고 싶은 티가 팍팍 난다. 어리숙하고 우스운 모습에 조소가 새어 나온다.
요새 읽는 책에는 시, 에세이, ― 책에서는 수필이 아니라 에세이라고 한다. ― 편지, 일기 등 다양한 글이 담겨 있어서 좋다. 시인을 보면 그가 쓴 일기가 궁금하고, 소설가를 보면 이 사람이 쓴 시가 궁금해지는데 마치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고 말하듯 다양한 글이 담긴 책은 볼거리 많은 관광지에 들른 기분이다. 아니면 관광지도 명소도 아닌데 의외로 풍경이 좋은 장소를 발견한 것처럼 설레고 기쁘다.
그렇다면 나는 산문 작가일까. 등단만 하지 않았을 뿐 ― 물론 그저 '뿐'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분이지만 ― 지금도 시, 소설, 일기, 수필, 편지 등 많은 글을 두서없이 쓴다. 생각하지 않고 쓰다가 생각을 하고 썼다가 다시 멍하니 쓰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은 꼭 남이 쓴 글 같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문장들인데도 도대체 이것들의 출처가 무엇일까 생각한다.
에세이를 읽든 수필을 읽든,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쓸까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들은 나와는 본질부터 다른 분들이니 나처럼 허허실실 이러쿵저러쿵 마구잡이로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존경스러운 사람들. 당신들의 재능과 감성을 조금이라도 본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쨌든 산문이 좋다. 산문(散文)이라는 말이 좋다. 어감도 좋지 않은가?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아무 벤치에 대충 앉아 펼치고 읽을 것만 같은 책이다. 시든 수필이든 단편 소설이든 뭐든 잘 담겨 있을 것 같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