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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Apr 17. 2024

그냥

머릿속을 지나가는 말들_13


나는 언젠가 '그냥'이라는 말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내가 실없이 그냥이라고 말하는 순간도,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냥이라는 실없는 말을 건네는 순간도.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거는 날이 종종 있다. 나는 왜 전화했어? 묻고 엄마는 그냥. 그렇게 대답한다. 내가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날도 있다. 그때도 엄마는 왜 전화했어? 물어보고 나는 그냥 했어. 그렇게 대답한다. 그러면 아무도 그 이상을 묻지 않는다.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사이에 안부 전화라고 하기에도 뭐 하다. 말 그대로 그냥, 그냥 전화를 한 것이다.


집에 있을 때도 엄마는 내 이름을 많이 부른다. 보통은 밥을 먹으라거나 어떠한 용건이 있을 때다. 하지만 그냥 나를 부르기도 한다. 왜 불렀어? 묻고 그냥 불렀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나는 그 이상을 묻지 않는다.


그냥
[부사]
1.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2. 그런 모양으로 줄곧.

3.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


마법의 단어다. 나에게 뭐 하고 있냐고 물을 때도 그냥 있다는 싱거운 대답을 내놓는다. 우리 집은 예전부터 특히 그랬다. 어떨 때는 그냥 뭘 하고 있냐고 짓궂게 캐묻기도 하지만, 그래 봤자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거나 밥 먹고 책 읽고 있었다는 대답이 전부다. '그냥'이라는 말은 별다른 용건 없이 연락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여서 도리어 정성스럽지 않게 나가는 대답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불만을 품지 않는 신기한 말.


언젠가 나는 이 말을 그리워할 것이다. 내게 그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내가 그냥이라는 말을 건넬 사람이 사라졌을 때. 혹은 이 싱겁고 시시한 마법의 단어를 꺼내지 못하는 세상이 왔을 때.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조금은 더 소중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많지 않다. 그냥은 그냥,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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