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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Apr 13. 2024

행복

머릿속을 지나가는 말들_12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라는 말은 안 좋아하지만, 행복은 찾고 싶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행복은 온갖 시련을 뚫고 나아간 용사가 마침내 마왕을 무찌르고 찾아오는 평화로운 세상이 아니다. 그냥… 아주 작고 사소하게 느끼는 즐거움과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들. 나는 마왕을 쓰러뜨릴 능력을 가진 용감한 기사가 아니어서, 고작 그런 것들을 모아 겨우 살아간다.


살아가는 일은 고되고 힘들다. 때로는 삶이 버거울 만큼 불행하기도 하다. 하지만 살아가는 일이 아파서는 안 된다. 나는 항상 그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행복은 불행만큼 사소하다. 나에게 우울과 기쁨을 주는 순간은 모두 자세히 설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작고 미세한 부분들. 누가 "너는 왜 사냐" 물어보면 "태어났는데 아직 안 죽어서"라고 대답하고, 어쩌다 보니 태어나서 만들어진 삶에는 이렇다 할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의 생(生)에 대한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어서, 나는 이왕 태어난 김에 최대한 나 자신을 안온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던 택시 기사 명업식 작가가 택시에 탔던 손님들이 공책에 적은 글을 엮어 출판한 <길 위에서 쓰는 편지>에 '행복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다면 응원 부탁드린다'라는 글이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이지만 어쩐지 정말 그 사람 말처럼 응원을 해주고 싶어서 답변처럼 메모를 달았다.


살다 보니 행복은 사소한 부분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갑자기 돈이 많아지거나 엄청난 행운이 찾아오거나 해외여행을 떠나는 날은 아주 행복하겠지만, 솔직히 내 삶에 그런 일은 거의 찾아오지 않고 그만큼 커다란 행복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책을 감명 깊게 읽거나,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고 편안하게 잠을 청할 때 행복을 느낀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꽤 상쾌해진다. 고양이 영상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지. 아직 부모님이 (그나마) 건강하신 것도, 형제와 (그럭저럭)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아직 내게 무언가를 도전하고 시작할 능력과 시간과 의지가 있다는 것도, 책과 글과 음악이 내 삶에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나의 삶을 이루고, 불운과 우울과 자괴감이 차고 넘치는 삶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하듯 행복을 찾아내는 게 때로는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산다는 건 힘든 일이지만, 언젠가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면서 문득 '그래도 내 삶은 괜찮구나.'라고 생각하는 행복을 발견하시기를. 혼자 응원을 보내드린다.


별다른 이유 없이도 이따금 우중충하고 어수선한 우울감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솔직히 행복이고 뭐고 그냥 혼자 방에 있고 싶다. 그러다가 기분이 좀 나아지면 비로소 무언가를 할 생각이 드는 것이다. 힘들 때는 가만히 그 힘든 시간을 보낸다. 구태여 억지로 기분을 환기하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그냥 조용히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마음은 안정된다. 그러고 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가족들과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듯 소리 없이 스트레스를 털어낸다.


그냥 산다. 최선을 다해서 산다. 열심히 산다. 나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이따금 칭찬해 주면서, 외로운 순간도 우울한 순간도 힘겨운 순간도 가까스로 보낸다. 그러다 보면 그냥 내 삶도 나름대로 행복한 삶이었다고 느끼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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