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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May 08. 2022

어머니는 마흔여덟에 꿈을 그리고, 독립을 외치신다.

한 가지 인생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어머니.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먹먹한 이름이라고 한다. 당연히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어머니의 존재를 알든 모르든, 그를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태어난 순간부터 '태어남'은 곧 어머니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 나는 평범하게 자랐다. 어머니와 사이는 좋다. 부모와 자식이라기보단 친구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니는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다.


사실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삶을 생각해 보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듯하다. 부모님이 결혼하시기 전 어머니는 나름대로 평온하고 적당한 인생을 살아오셨다. 70년대 한국의 어느 농촌 마을에서 부모님과 4명의 자매를 두고 자란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달리 고된 집안일이나 바깥일을 하신 적도 없고, 가난 때문에 허기에 시달리신 적도 없고, 당신의 부모님―나의 외조부모님―께 혼난 기억도 없다고 하신다. 지금까지도 애틋함과 밝은 웃음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어머니 곁에 있어 그 또한 다행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결혼 후의 어머니의 삶은 제법 고단했다. 부부관계는 위태로웠고 형편은 계속 어렵기만 했기 때문에. 부모로서 짊어진 책임감과 부담감은 무척 막중했으리라.


부모님은 도대체 어떻게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함께 살았을까 싶을 만큼 성격과 성향이 정반대인데, 그만큼 충돌하는 경우도 많아 다툼이 잦으셨다. 본래 유한 성질은 아니신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고 매일 밤마다 술에 빠져 어머니에게 화풀이한 것이 아마 균열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추측하지만 반드시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전부터 이미 화목한 가정으로는 거듭날 수 없는 기울임이 있었으리라 생각하기도 한다. 어쨌든 아버지도 풍족한 집안에서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라진 못하셨으니,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분노를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물론 아주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어머니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서는 25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집안에서만 보내셨다. 전형적인 외벌이 집안이었으니 독박 육아, 독박 가사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까. 세 명이나 되는 자식을 거의 홀로 키우신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요즘에는 부부 사이의 대화도 극히 줄어들었고, 이제 서로의 인생에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보이기도 하신다. 그동안 쌓였던 온갖 불만과 스트레스로 인해 몸도 마음도 불건강하다는 어머니는 5월 5일 어린이날 저녁에 문득 독립을 외치셨다.




"이제는 정말 나도 독립을 해야겠다."




올해로 마흔여덟이 되신 어머니가 독립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니, 나는 가장 나이 어린 자식으로서 엄마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흔여덟. 제2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인가. 그러나 어머니도 머지않아 오십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은 과거의 흔적으로 남겨두고 제2의 삶을 찾기도 충분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남편과 자식과 집안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시간. 어머니는 아내와 어머니로 살아오느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이제는 그 시간을 마음대로 누려야 할 적정기다.





어머니도 꿈을 가진 사람


대학교에서 의상학과를 전공한 어머니는 결혼하기 전, 잠시 옷가게에서 디스플레이어로 일하셨다고 한다. 디스플레이어는 매장에 상품을 진열하고 장식하는 걸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다. 어머니는 옷가게에서 일하셨으니 의상을 조합하고 디자인하는 걸 주로 하셨다고 한다. 대학생 시절에는 의상학과를 전공하며 패션쇼를 보러 전라북도에서 서울까지 오기도 했다던 어머니. 결혼한 지 25년이 넘은 어머니가 지금도 종종 떠오르는 시기가 바로 디스플레이어로서 활동하던 때. 열정과 꿈을 가지고 일할 때를 지금은 가장 그리워하신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 특히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역할과 이름 자체에 구속되기 쉽다. 하물며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던 집에서 어린 세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자신의 꿈을 위해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다시 시작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에 "시대도 너무 많이 변했고, 요즘에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낄 자리도 없다."라고 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내심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다.


부모라고 해서 꿈을 지워버린 것도 아니고, 어머니라고 해서 가정과 자식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삶을 희생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있다고 해도 그건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는 엉터리 법에 불과하겠지. 자식으로서 부모의 꿈을 아는 건 이해의 방식 중 하나이다. 어머니 왈 잔정이 없고 무뚝뚝한 자식이라도 효도하는 자식이 되고 싶다. 꿈이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소망이나 소원, 하고 싶은 것, 버킷리스트 등 부모님의 바람이나 관심사는 무척 쉽게 알 수 있는 것인데, 이상하게 20년을 살면서 관심을 가져본 적이 많이 없다.


어렸을 때는 세상 전부였던 부모님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자식이고, 한없이 불완전하고 미약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나는 어머니가 청춘을 보내며 품었던 꿈을 안다. 그것을 지나간 꿈에 지나는 과거로 방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지친 몸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꾸 무기력에 빠져드는 어머니가 조금 더 건강해지기를 바란다. 현실에 치여 식어가는 어머니의 마음이 다시금 아궁이 불처럼 뜨뜻하게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다. 쥐꼬리 월급이지만 돈도 버는 자식으로서 경제적 원조는 흔쾌히 가능하다. 이것이 부모의 꿈을 알게 된 자식의 마음이다.





꿈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테니


사실 '꿈'이라는 건 상당히 모호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꿈의 존재가 삶의 원동력과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아픈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아무리 찾아봐도 꿈이라고 할 것이 없어 괜한 자책감이나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궁극적인 꿈이라고 한다면 돈 많은 백수 같은 모두의 희망사항이지만, 꿈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일도 없다. 나의 경우는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후배가 "선배는 인생의 목표가 뭐야? 이것만은 꼭 이루고 죽겠다 하는 거!"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젊었을 때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는 느긋하게 여행 다니고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살고 싶다 정도로만 대답했다. 생각해 보면 그 이야기가 가장 실현하기 어려운 동시에 그만큼 내가 바라는 먼 미래의 꿈이다.


그래서 버킷리스트가 좋다. 오늘의 해가 뜨면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일이 바뀌고, 숫자는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를 반복한다. 죽기 전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일 정도로 바라는 꿈은 무엇일까. 그런 걸 고민하면 결론은 비슷하다. 나는 그다지 거창한 삶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 소박하고 조용한 행복을 품고 사는 게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이루고 싶은 하나의 꿈 자체라는 것.


꿈은 존재한다. 있다가도 없어지고, 하얀 백지처럼 멍하다가도 갑자기 잉크 몇 방울이 툭툭 떨어지며 꿈이라는 게 생기기도 하고. 꿈이 있든 없든 그것을 갈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짧은 생이지만 삶은 길고, 시간은 없지만 마음은 넘쳐난다. 모든 걸 이룰 수는 없어도 나름 잘 살았다는 이야기 하나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인생이라면 꿈은 사막 속 오아시스처럼 존재하리라는 걸 안다.




어머니는 마흔여덟에 독립을 외치셨다. 오랫동안 가정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서 자신을 희생하다가 비로소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려 하신다. 그건 자식인 나에게도 무척이나 기쁜 일이다. 사랑과 꿈을 위한 독립. 나 자신을 위한 독립.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처럼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한 사람이 자신을 위한 일을 고민하는 과정이 어찌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상 디자인도 하고 싶고, 디스플레이어 일도 다시 하고 싶고, 공예도 배우고 싶고, 하모니카 같은 악기도 배우고 싶다는 어머니는, 순수한 꿈에 부풀었던 어린아이처럼 한창 조각을 모으고 계신다. 반드시 지금 당장 이뤄내지 않아도 되는 빛나는 것들.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거나 멈춰있던 꿈에 시동을 건 어머니가 달려가는 과정을 글로도 남겨보고 싶다. 아니면 어머니에게도 블로그나 SNS나 브런치를 한 번 가르쳐 드릴까? 어머니도 글의 매력을 느껴보셨으면 좋겠는데.


버스로 10분 정도 걸리는 역 근처 문화센터에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알아보고 계시는 어머니가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기를. 간직했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많은 경험과 성찰을 통해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버이날을 맞이해 손편지에도 진심을 담아 글을 꾹꾹 눌러 담았다.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얼굴을 보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다.





일상에서의 독립


며칠 전 친구와 서울로 달려가 <로그아웃>이라는 전시회를 체험하고 왔다. 전시회 콘셉트는 들어가는 순간 일상에서 로그아웃을 한 채 잠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전시회를 나오는 순간 다시 일상에 로그인하고 바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독립. 그건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좀처럼 평범해질 수 없어 허덕이는 나에게, 독립이라는 말은 새로운 모험의 시작점을 알리는 웅장한 북소리 같기도 하다. 물론 인생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계속 살아가야 하는 순간이므로 답답하고 힘겨운 일상에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어떤 순간에서의 독립은 단순히 독립했을 때 떠오르는 경제적, 정서적, 물리적 독립과는 상당히 다른 매력을 안고 있다.


일상에서의 독립, 나 자신을 찾아 나서는 독립은 어느 순간이든 내 앞에 다가오겠지.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라 여긴다. 사람은 언제나 하루를 버티고, 꿈을 그리고, 순간을 견디고, 새로운 삶을 갈망하고 외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안정을 추구하고 보편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면 나 혼자만이라도 그런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보려 한다.




나는 어머니의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의 삶도, 나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다른 이들의 삶도 따스해지길 바란다. 그 순간은 갑자기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냥 서서히 삶을 걸어가는 길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조각이 모이면 어느 순간 나는 따스함을 느낄 것이고, 고단한 삶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내리라 믿는다. 너무 희망적인 이야기일까. 하지만 나는 이상주의론을 싫어하는 이상주의자이니 어쩔 수 없다.


일상을 견뎌내는 모두가 언젠가 또 다른 독립의 순간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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