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야사 Apr 02. 2022

학생

그들은 나라의 미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과거이자 미래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겨울방학이 되었을 때. 갓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방학'이란 사라진 단어가 되고 말았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그 단어만으로도 무료한 설렘에 심장이 뛰었던 날은 어느새 지난날이 되었다. 시간은 참 느리고도 빨랐다. 나는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데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학생일 것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학생이다. 누구나 학생이 된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 아침이 뜰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배우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나는 분명히 학생이다. 복잡한 세상의 이치를 알고, 고난과 역경이 굴곡을 그린 하루를 견디고,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를 알아가는 과정을 겪는다. 그건 그 자체만으로도 배움이니까.


그래도 역시 학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지 않은가. 답답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교복을 입고 좁은 교실에 책상을 다닥다닥 붙여 앉아 졸음과의 싸움을 견디는 모습. 과거는 신기하게도 그 당시에는 칙칙한 흑백으로 머물렀다가, 지난 시절이 되면 그제야 아름다운 색으로 물든다. 당장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빨리 어른이 되어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러나 험한 세상에 발을 내밀고 나니 조금은 알겠다. 어른이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성인은 자유보다도 책임감과 부담감을 짊어져야 하는 자리라는 걸. 힘들지만 괜찮다. 버틴다면 버틸 수 있다. 나는 보잘것없이 아주 작은 별이지만 나름대로 내 삶을 열심히 빛내고 있다.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좁고 어둡기만 하다. 앞으로 배울 게 산더미처럼 쌓인 학생이라 그런가.




출근길 버스를 타면 종종 보인다. 교복을 입고 왁자지껄 떠드는 이들. 고작 몇 개월 전이지만 왠지 아주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학생 무리가 있다. 그들에게도 오늘 하루는 힘겹고 즐거운 날이겠지. 그들에게도 오늘 하루는 맑은 물빛이거나 탁한 잿빛이거나 따스한 노을빛일 것이다.


오늘 3교시에 있는 발표 수행평가를 걱정하고 있을까. 다음 주 수요일 급식 메뉴를 기대하고 있을까. 겨우 한 달밖에 남지 않은 기말고사 생각에 한숨이 나올까. 일주일 전에 말다툼을 한 친구에게 어떻게 다시 말을 걸지 고민하고 있을까. 책상에 앉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내뱉을까.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 갈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플까. 교실 책상에 앞뒤로 앉은 친구와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어떤 과목 선생님이 싫다거나, 교복을 줄여야겠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거나, 숙제는 얼마나 했냐는 이야기를 나눌까.


그런 장면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스물이 된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학생으로 돌아간 듯하다. 무언가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시절. 작년에는 고등학교 3학년. 재작년에는 고등학교 2학년. 시간을 더 거스르면 고등학교 진학을 걱정하던 중학생이고, 조금 더 내려가면 중학교 진학에 가슴이 떨리던 초등학생이다. 책상을 꼭 붙여 앉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는 게 일상이었던, 운동회를 하는 날이면 어머니까 싸오신 도시락을 먹으며 계주를 응원했던 어린 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난 아직도 참 어리다. 선생님들께서 우리를 보며 "너희는 아직 어려도 너무 어리다!"라고 말씀하셨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학생이란 그런 존재다. 수많은 것을 배워가는 존재. 아직 어려도 너무 어린 사람들. 그렇기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갈 페이지가 아주 많은 사람.


나보다 겨우 한두 살이나 서너 살밖에 어리지 않은, 그렇지만 가르쳐주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아주 많은 학생들을 보면 말해주고 싶다. 세상은 어린 학생들에게 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이루어 갈 인재이자 미래라고 말하지만, 그 이전에 학생은 자기 자신의 과거이자 미래라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어떻게든 나라를 좋게 만들고 세상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라고. 그렇기에 학생의 삶을 소중히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나조차 해내지 못했던 일이니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모두 학생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이 그럴 것이다.


나이가 몇 살이든, 어떤 세상에서 태어났든, 어떻게 살아왔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배움 앞에서는 모두가 똑같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어떻게든 무엇이든 배워가는 존재니까.




교육의 목적인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것이 있다.
- 프랑스의 교육학자, 철학자, 작가 장자크 루소 -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느림의 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