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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un 22. 2024

하루 기록_690

2024.06.20(목)


오늘은 소동이 있었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모르겠다는 형제에게 반쯤 장난으로 핀잔을 했더니, 갑자기 화를 내며 자신이 집안일을 전담하고 있다는 점을 매우 불만스럽게 토로했다. 엄마가 강화도에 가거나 집을 비우면 나와 형제 둘만 집에 남는데, 물론 나보다 형제가 집안일을 더 많이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말에도 엄마가 없을 땐 청소, 설거지, 식사 만들기 등은 모두 형제가 담당했으니 불만을 품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후 출근인 형제와 다르게 나는 오전 일찍 출근해서 형제보다 늦게 퇴근해서 아무래도 자유시간이 적기도 하고, 빨래 널기와 개기, 설거지 정도의 집안일은 하는데 말이다. 형제는 남들보다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을 가지고 있기에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거나 동요하는 편이다. 나 역시 나의 잘못을 인정한다. 남을 탓하고 미워하는 모진 마음은 서서히 흘려보내야 한다.


퇴근길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왜 갑자기 급발진을 한다냐. 아무튼, 그 피가 어디 가겠어."라고 말했는데 ― 정말 이렇게 말했다! ― 아마 그 '피'는 성격이 다혈질인 아빠를 뜻하는 말이었으리라. 우리 가족은 대체로 감정적인 성향이 강하다. 나는 내가 상당한 기분파라는 사실을 알기에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분노와 불만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도, 무분별하게 외부로 표출하는 것도 모두 좋지 않다. 억제와 표출의 적절한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하는데 차라리 석가모니처럼 해탈이라도 하는 게 가장 이롭지 않을까 싶다.


형제와는 저녁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시간에 맞춰 운동을 했고, 널어둔 빨래를 개었고, 독서기록장을 마저 작성했다. 이번 주 주말에는 오랜만에 조부모님을 뵙기 위해 형제들끼리 시골에 내려가기로 했는데 분위기가 쭉 냉랭할 것 같다. 큰 걱정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신경은 쓰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시골에 갈 때 가져갈 책을 고민해야겠다.


오늘 하늘은 파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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