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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un 24. 2024

하루 기록_693

2024.06.23(일)


오늘 무려 아침 6시에 기상했다. 할아버지가 형제를 불러 깨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가 그대로 거의 잠들지 못했다. 조부모님 댁에서 우리가 자는 방은 돌침대여서 거의 맨바닥에서 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등이 배긴 채 일어났고 아침 7시에, 평소에는 곤히 자거나 겨우 깨어날 시간에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제일 보고 싶어 하시는 모습이 ― 그리고 사실상 유일하게 보실 수 있는 모습이 ― 밥을 먹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있는 힘껏 맨밥을 씹으며 열심히 밥을 먹었다.


출발한 건 오전 9시 정도였고 집에 도착한 건 오후 2시 정도였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다가 깜짝 놀라서 기겁하고 말았다. 지금 사는 집은 복도식 아파트인 데다가 복도에 창문이 없어서 외부의 것 ― 바람, 비, 벌레 등 ― 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데, 요즘 한창 서울에서 대량 출몰한다는 '러브버그'가 하얀 복도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10~20쌍은 족히 넘어 보였다. 으어어억! 그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날씨가 더워서 부모님이 현관문을 열어 두셨는데,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벌레가 잔뜩 있다며 얼른 문을 닫으라고 했다. 그리고 은행에 볼일이 있어 다시 차를 끌고 나간 형제에게 전화해서 '복도에 벌레가 많이 있으니 들어올 때 놀라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상당히 고층에 속하는 우리 집 창문으로도 러브버그가 휘날리듯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서울의 형제 집에는 한 마리도 없었는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복도에 한두 마리 정도 보이는 게 다였는데, 언제 이렇게 많아졌나 의문이었다. 내일 출근길이 몹시 걱정된다. 퇴근길도 물론 걱정이다. 집안에서도 두어 마리를 잡았다. 그나마 생명력이 약하고, 사람을 물지 않으며, 수명이 짧다니 다행이지만….


어쨌든 충격을 뒤로하고 할 일은 했다. 침대에 노곤노곤하게 누워 있다가 운동을 했고, 김금희 작가의 단편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었다. 언제 받았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김금희 작가의 작품 문장 필사 미니노트가 있는데, 오늘 쓴 문장은 <오직 한 사람의 차지>라는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레이디]라는 작품에서 나온 문장이다. '말끝을 올리고 내리는 것으로 누군가는 남겨지고 누군가는 옮겨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 어쩌면 세상의 많은 일들은 그런 사소한 변별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에 대해 그후로도 오랫동안 생각해왔다.'라는 문장. 너무 한낮의 연애를 다 읽으면 다른 단편소설집을 하나 사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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