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시
<동일시: 개인이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사람을 닮게 되는 자동적이며 무의식적인 정신과정. 동일시는 성숙 및 정신 발달을 수반하며, 흥미, 이상, 버릇, 기타 다른 속성을 획득하거나 배우는 과정을 돕는다. 개인의 적응적 반응 유형과 방어적 반응 유형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나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사람과의 동일시를 통해서 형성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동일시를 “자아가 타인의 특성을 자신의 일부로 삼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즉, 외부의 대상을 내면화하여 자신의 정체성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아빠와 나는 서로 먹고 먹히는 동일시의 굴레 안에서 지독히도 얽힌 존재였다. 아빠를 닮은 나는 당신에게 또 하나의 자신이었고, 나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는 아빠는 나에게 또 하나의 내가 되었다.
이제껏 아빠의 무자비한 폭력과 미성숙함에 대한 나열들만을 해왔지만, 아빠는 그에 못지않게 당신 나름의 방식대로 나를 아끼기도 했다. 꼭 방문하지 않아도 될 친척 행사에 굳이 엄마와 동생은 놔두고 나만 데려가려 한다던가, 동네에 어딜 가든 나의 손을 붙들고 나간다던가.
‘나의 자랑스러운 딸’
친척이고, 이웃이고, 친구이고 할 것 없이 아빠는 나를 자랑하며 다녔다. 마치 자신이 이루지 못한 성공을 대신 이뤄줄 존재인 양. 그래서 아빠의 그 말들이 나에게 기준이 되어 돌아왔다. 나 역시 그 성공을 대신 이루어 자랑스러워야만 한다는 말로.
그러나 문제는, 내 안에 자라고 있던 것이 아빠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의 생각과 나의 감정들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면서 막연한 불만이 자리잡게 되었다. 왜 내가 그 자리에 가야 하는가, 왜 내가 아빠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가, 왜 당신은 나에게 그걸 바라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때리는가, 그가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자격’
종국에 도달한 의문이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회계사를 준비하겠다며 퇴사했던 아빠는 그대로 주부가 되어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가정도 잘 챙기는 사람은 아니었어서 우리 집은 일주일 내내 저녁마다 외식을 하고, 엄마는 주말마다 밀린 집청소를 했다. 밥 차리기가 귀찮고, 청소하기가 싫은 아빠 때문이었다. 당시 나와 동생의 바람은 외식 좀 그만하고 집밥을 먹는 것이었는데 이게 조금은 특이한 분위기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엄마는 경제활동과 집안일까지 전부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내 눈에 아빠는 그냥 노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나도 동생도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하는 와중 유일하게 아무 역할도 수행하지 않는 사람, 의무는 없고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 그러면서 나에게 자랑스럽길 바라는 사람, 그런 바람을 가질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
그렇게 반항이 시작되었다. 반항이라 해봤자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10대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고, 간덩이 크게 사고를 치는 것도 무서웠던 나는 비수 같은 말로 아빠를 공격했다.
“집에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정확하게 아빠의 자격지심을 꿰뚫는 말은 접시나 빗자루를 나에게 던지는 행동으로 돌아왔다. 원래도 훈육과는 거리가 먼 폭력을 썼던 아빠였으나 더더욱 거침이 없는 폭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