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대는 투쟁이었다-5

회피

by 시면

<회피: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부인하거나 인지하지 않는 방어기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이러한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하는 정신의 방어 메커니즘. 프로이트는 회피를 우리의 무의식이 불쾌한 생각이나 감정, 추억을 억제하고 인식하지 않는 방법으로 보았다.>


아빠는 20대부터 당뇨가 있었다. 친가 쪽 친척들은 대부분 당뇨를 가지고 있어서 아마 어느 정도 유전이었으리라고 추측된다. 회계사를 준비하던 아빠가 결국 주부가 되어버린 원인에는 이 당뇨 때문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빠는 놀라울 정도로 건강관리라고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다. 건강한 사람도 저렇게 지내면 큰일 날 것 같은 생활을 이어나갔다. 저녁마다 반주를 곁들이고, 낮에는 낮술에 찌들어있었다. 줄담배를 피워대면서 먹고 싶은 건 개의치 않고 먹어댔다. 아빠와 살면서 한 번도 아빠가 혈당 체크를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결국 눈에 합병증이 오게 되었고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나중에는 길거리에서 내가 바로 옆에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빠의 회피는 아빠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바로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당뇨가 의심되는 상황에 처하면서 아빠의 회피는 나에게 직격타로 다가왔다. 고등학생이 되자 나는 너무나 분명한 당뇨 증상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갈, 다식, 다뇨. 너무 많이 먹었고, 그에 비해 살은 빠졌고, 갈증은 끊이지 않아서 물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아빠는 비난 했다. 우리 집 물값이 너 때문에 다 나간다며. 병 때문에 생긴 증상을 내 의지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고 물마저도 눈치 보면서 몰래 먹어야 했다. 그 때의 나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몰랐고, 그 상태로 지속되던 몸은 여러 가지 이상신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채로 수능을 보았고, 수능의 결과는 처참했고, 아빠의 폭주를 피해 엄마는 나를 이모 집으로 피신시켰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정신적으로 몰릴 데까지 몰린 상태로 성인이 되는 1월 1일을 3일 앞두고 나는 케톤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케톤산증으로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병이다. 나타나는 증상과 징후로는 구토, 복통, 쿠스마울호흡, 다뇨, 쇠약, 혼란, 혼수 등이 있다.)


혼수상태로 스무 살의 첫날을 보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술을 마시러 다니던 내 또래들과 달리 스무 살의 첫날은 내 기억에 없다. 드문드문 눈을 잠깐씩 뜰 때마다 옆 사람이 바뀌어있고, 뒤에선 가족들이 울고 있고, 누구는 힘들 것 같다는 간호사들의 말이 들린 기억뿐. 삶과 죽음의 최전선에서 겨우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1월이 되고 3일 정도 흐른 후였다. 6인실로 병원을 옮기고 퇴원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은 고요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아빠의 폭주는 내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와도 부족했는지 보름 정도가 지나자 다시 폭언과 폭력이 시작되었다.


이대로는 살 수 없겠다, 처음 생각했다. 모아둔 돈으로 아빠 몰래 고시원을 알아보고 계약을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긴 채로 살기 위한 첫 가출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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