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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유정 Feb 23. 2023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내'가 될 줄은 몰랐어요.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요?

2012년 나는 20살이었다. 

집에서 나와 독립해 살게 된 나는 신나게 20살을 즐겼더랬다. 


사진: Unsplash의Vasily Koloda


그로부터 10년 하고도 1년이 더 지난 지금, 31살이 되었다.


20살의 나는 30살이 되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괜찮은 차를 가지고 있으며, 전세든, 자가든 나의 이름으로 계약을 한 아파트에 살고 있을 거라 상상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평범한 30대의 인생인 줄 알았다. 


사진: Unsplash의Hans Vivek


그러나 31살이 된 지금의 나는 어떤가.

가진 거라곤 2016년식 스파크 1대와 천만 원 남짓의 여유자금뿐이다. 심지어 요즘은 엄마의 아파트에 얹혀살고 있다.


사실 나는 매우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자 직장인이었다. 대학교도 지방대였지만 괜찮은 학교를 나왔고, 학점도 4점대에 학생회 등 여러 활동도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규모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하고 일정 금액 이상의 월급을 받으며 살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아마, 우리 부모님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생은 정말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



노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내 길이 아니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운이 안 따라 준 것일까?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은 대부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좋은 직장에 취업을 했고, 이제 막 결혼을 하며 자신들의 가정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 3년이 넘어가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며, 이제는 성과를 쌓으며 진급을 하거나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하며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들과 달리 현재의 나는 직장을 잃고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인 백수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도 스타트업에 다니며 전공과는 매치되지 않는 전혀 다른 업무와 경험을 쌓으며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이렇게 친구들과는 좀 다른 회사를 다니다 보니 결혼식이나 모임이 있을 때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끼지 못하고 조금은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왜 이들과 다르게 살고 있지?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적은 월급과 회사 복지, 임금 상승의 기회 등. 이것저것 비교가 되다보니 내가 선택한 길인데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 걱정이 되었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나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인 걸까?


사진: Unsplash의Jon Tyson


나의 첫 직장은 중소기업이었다. 지방 소도시 어느 시골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공장의 품질 관리 사원. 엔지니어로 여자를 채용한 건 내가 처음이란다. 그렇게 나의 20대 중반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작은 도시에서 외로이 고군분투하며 일을 했다. 이때 4년제 공대 출신인 나의 월급은 실수령액 200만 원이 채 안 됐다.(근로계약상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 이야기도 기회가 되면 해보겠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두 번째 직장은 스타트업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가 회사를 설립한 지 약 5개월이 된 시점이었다. 첫 직장에서 업무 적성이 너무 안 맞아 크게 후회도 하였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근무 제안이 들어와 일을 했다. (당시 창업에 관심이 있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기서는 3년 반 정도를 일했고, 4년제 공대에 석사까지 졸업한 나의 월급은 (스타트업 여건상 어쩔 수 없으며, 내가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친구들과는 다르게 일하고, 월급은 적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스타트업이 살아남기에 현실은 혹독했고 결과적으로 나는 실업급여를 받는 비노동자가 되었다. 


월급 200만 원, 누군가에게는 크다고 할 수 있지만 혼자 월세를 내고, 차도 끌며 살기에는 참 쉽지 않다. 내가 월급 200만 원을 받으며 일을 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직원 5명이 채 안 되는 회사에 다니게 될 거라고, 이렇게 비자발적으로 직장을 잃게 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내가 직접 화장품을 만들고, 마케팅을 공부하고, 어플케이션을 만드는데 참여할 거라곤 생각이나 했을까?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을 다니는 것이 안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전 회사에 다닐 때 나는 걱정도 했지만 자부심이 있었다. 다만, 어릴 적의 나는 내가 무조건 대기업에 가는 것만을 상상해 왔다는 뜻이다.)


20대 내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갔고 그 덕에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 앞으로 내가 뭘 하게 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하는 일에 책임과 최선을 다하여 지금의 상황에서 쌓을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최대한 쌓는 것이구나.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3년 2월. 나는 또 다른 나의 길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금 선택한 길도 수많은 고민 끝에 선택을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바랄 뿐이다. 지금의 선택이 이전의 선택보다 더 나은 선택이기를. 


요즘에 읽고 있는 책이 있다. 김혜남 선생님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책인데 지금의 상황에 어울리는 문장이 있어 이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원하는 게 꼭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사촌 오빠의 말처럼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 있는 법이고, 차선이 아니면 차차선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나처럼 차선의 길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더 큰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정말이지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인생이고,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게 인생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내가 이제껏 걸어온 길은 내가 생각했던 최선의 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걷는 길 속에서 성실했고, 책임을 다해왔다. 그 결과 나만이 깨닫고 배울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 지금의 선택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전보다 더 최선을 다해 내가 택한 길과 그 결과 속에서 내 길을 찾아갈 것임을 다짐해 본다. 그러다 보면 보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맞이하게 되리라 긍정적으로 희망해 본다.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인생이고,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게 인생이다. 아직은 실망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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