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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 Dec 07. 2023

콜센터 직원과 안부를 묻다.

핸드폰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중에 유독 반갑지 않은 번호들이 있다. 15OO-15OO 콜센터에서 오는 마케팅 관련 전화들이다. 평소에 그런 전화는 수신거절하고 받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왜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고객님 OO카드사 마케팅 동의 하신 분들을 상대로 연락드리고 있습니다.

현재 쓰고 계신 카드로 관리비 이체 하실 경우 캐시백 혜택 드리고 있어서 안내해 드리고자 전화드렸습니다."


자동이체를 변경해서 해당 카드로 등록하면 캐시백을 해준다는 말이었다. 다른 카드에 연결되어 있어서 그대로 쓰겠다고 말했는데 이 상담사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 살짝 울먹거리는 느낌이기도 하다.


'어? 우는 건 아니겠지?' 좀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일단 설명을 계속 듣고 있었다.


분명 신입직원의 목소리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되는 직원이라서 긴장한 건지, 원래 목소리가 떨리는 직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심드렁하게 받는 내 귀에도 확연히 들릴 정도로 콜센터 직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서비스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직접 바꾸지 않아도 동의만 해준다면 바꿀 수 있다는 말에 귀찮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아챘는지 앳된 목소리의 직원은 더욱더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화로 마케팅을 하는 경우 짧은 시간 내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에 속사포 랩을 하는 수준으로 설명을 한다. 그런데 이 직원은 어찌나 또박또박 읽는지 마침표 하나까지 읽는 듯한 느낌이다.


너무 열심히 설명한 나머지 숨 쉬는 구간도 잊은듯했다. 한참 듣고 있던 나는 짧게 대답했다.


"자동이체 바꿔주세요. 지금 그 카드로 상담사 님이 바꿔 주실 수 있는 거죠?"

"네? 바꿔 드릴까요? 지금 요청하신 대로 자동이체 변경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다다다 다닥다닥' 열심히 키보드로 입력하는 소리가 들린다. 점심시간 채워야 할 목표치를 많이 못해서 마음이 바쁜 건 아니었는지 슬며시 걱정도 해본다. 본인확인을 위해 전화번호도 물어보고 주소도 물어보고, 자동이체 날짜까지 확인하고 이 직원은 기분이 좋아진 거 같다. 이상하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일 텐데 내 기분도 좋아진다. 


"고객님 아파트 관리비 자동이체 등록해 드렸습니다. 더 필요하신 내용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어요 감사합니다."

"네 그럼 통화 종료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상담사 OOO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상담사가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갑자기 불쑥 이런 말이 나왔다.


"점심 드셨어요?"

"아니요. 아직......"


이 직원 순간 당황한 듯하다. 점심식사 여부를 왜 물어보는 건지 놀라서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곧 점심시간 이잖아요. 설명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나...... 고객님 같이 말씀해 주신 분 처음이에요. 고객님도 점심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콜센터와 전화를 종료하고 기분이 좋아진 건 나도 처음인 거 같다. 그 직원은 힘이 드는 수많은 날들 중에서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하며 점심 식사를 갔으면 한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며 힘든 날도 좋은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열흘 중에 괜찮은 하루나 이틀의 기억으로 나머지 날들을 살아갔었다.




오늘 있었던 이 짧은 에피소드를 퇴근하고 소파에 녹아내리듯 누워 있는 남편에게 열심히 이야기했다.


"그 콜센터 직원 오늘 기분 좋았겠지? 나도 덩달아 좋더라고, 스스로 아주 칭찬해 주고 있었어! 오늘 멘트 아주 괜찮았어 어때 그렇지?"


괜찮은 피드백을 기대하고 있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어 그래 괜찮다. 어 어 그래 그래 (영혼은 밖에다 두고 들어왔나 보다.)

그 직원 배고파서 점심 먹으러 가야 하는데, 네가 자꾸 질문해서 점심 먹으러 늦게 간다고 불평했을 수 도 있어, 전화 끊고 이랬을걸?  '아 배고픈데 말 너무 길게 해!' 막 이렇게 하하하하하"


저렇게 이야기하고 신난다고 웃고 누워있다. 소파의 팔걸이 쪽에 얼굴이 묻혀 있어서 배부터 발까지 밖에 보이지도 않는다. 껄껄대며 웃는 모습에 소파까지 들썩들썩 움직이고 있다. 거실에서 소파를 빼 버릴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을 훅 스친다. 누워서 말하는 자태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말 남편이랑 너무 안 맞는다. 이렇게 안 맞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뭐 어떠랴 싶다. 내 기분 좋았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하루였다. 


다음에 콜센터에서 또 전화가 올 텐데 그때는 모른 척 수신거절을 누를지도 모르겠다. 





상단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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