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아 Nov 30. 2023

아들 방에 요강을 놔주고 싶다.

내년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는 아들은 어려서부터 말이 너무 많았다. 오죽하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자기 직전까지 입으로 계속 떠들었다. 눈이 떠지면서 입이 같이 열리고 아이와 둘이 있는 주말이면 어찌나 말을 많이 하는지 환청이 들린다고 남편한테 토로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말이 빨리 트여서 걱정은 없었지만 "이거 뭐야?", "왜 그런 건데?", "나도 알려줘 궁금해 궁금해!" 3종 세트 때문에 머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학원 숙제 밀렸다며 들어가라는 말에 아들은 "들어가려고 했어, 지금 막 일어나고 있어, 지금 이제 들어가"라고 말하며 최대한의 시간을 끌고 늦게 들어가려고 한다. 방으로 가는 그 길이 천리라도 되는 듯 오래 걸린다.  들어가면 또 진득하게 공부하느냐 절대 아니다. 들어간 지 5분도 안돼서 물먹고, 쉬하고, 똥 싸러(고급 어휘를 쓰고 싶지만 감정이 살지 않아, 미취학 용어로 표현합니다.) 간다고 바로 나온다. 들어가기 전에 아들의 뒤통수에 벼락같이 소리를 질러댄다.


"들어가기 전에 물먹고, 쉬하고, 똥 싸고 3종세트 하고 들어가! 나오지 좀 마!"

"지금은 안 마려운데 있다가 마려우면 어떡해, 방에다가 쌀 순 없잖아!"

"이 자식이 야!!!"


밖에서 잘못을 하거나 혼을 내야 할 때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라면서 꾹 꾹 참고 들어 오는데 집에서는 입 밖을 나서는 격한 언어를 조절할 수가 없다. 느 집도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위안을 삼고 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 뒤도 안 보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떤 날은 본인도 들어가자마자 나오기 민망했는지 얼굴만 빼꼼 내밀고는 나 마려운데 화장실 가면 안 되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럼 나는 매우 이성적이고 차갑게 말한다.


"방에 다 싸!"

"아 진짜 급하단 말이야! 진짜야!"


이렇게 저질적인 대화가 오고 간다. 남편은 자포자기한 듯 우리 모자를 쳐다본다. 민망해진 나는 남편한테 더 화를 낸다.


"왜 보는데 뭐! 뭐! 뭐!"

"아니야, 우리 아가 저 방에 가서 놀자."


남편은 지금 이 순간 한마디를 더 하면 모든 덤터기는 본인이 쓰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둘째 아이와 부리나케 방으로 피신을 해버린다. 화가 난다. 일요일 오후 4시쯤 되면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다. 이래서 가족은 가끔 봐야 한다. 금요일 저녁부터 2박 3일을 붙어 있으니 이 사달이 나는 거다. 아침, 점심, 간식까지 거의 3번의 식사를 하고 저녁 준비를 또 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나를 화나게 만든다.


Unsplash의 Simon Arthur


최대한 화를 억누르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또 저녁을 준비한다. 아들이 방에 들어간 지 정확히 30분도 되지 않았다. 이 자식이(나름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또 나온다. 이번에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호기롭게 풀어헤치면서 왜 또 나왔냐고 복식호흡으로 질러 대려던 순간! 아들이 문제집을 살랑살랑 흔든다.


"채점해 달라고"

"어, 어, 가지고 와 빨리 풀었네?"


세상 이렇게 태세 전환이 빠를 수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순발력에 놀라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채점을 하기 위해 앞치마를 푸른 것 마냥 부드러운 스냅으로 착착착 개어 아일랜드 식탁 위에 사뿐히 놓아두고 수학 문제 해설집을 펴 들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내가 생각해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눈치 빠른 아들놈이 이 틈을 그냥 넘길 리가 없었다.


"엄마 내가 또 나온 줄 알고 소리 지르려고 했지? 헤헤헤 맞지 맞지?"

"끄응......아니야 채점해주려고 했어"


채점을 하는데 이 쉬운 수학 문제를 우수수 틀리고 있다. 어쩐지 좀 빨리 풀었나 싶었는데 발로 푼 모양이다. 단전에서 힘을 끌어모으며 소리를 지르려는데 아들이 물을 마시고 있다.


"물 한잔의 여유!"

"물 한잔의 여유는 개똥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다 틀렸어 이 자식아! 다시 풀어와!"

"푸학, 엄마! 물 다 쏟았잖아 엄마는 왜 이렇게 개똥을 좋아해!"


아들은 내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깔깔대고 웃고 난리다.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오라고 시키니 이번에는 또 화장실에 가야 한단다. 그렇다 방에 쌀 쑤는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지성인이다. 두 돌 무렵 기저귀를 떼고 의기양양하게 화장실로 향했던 아들이란 말이다. 언제쯤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를 할런지 저 밑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사그라 들지 않는다.


정말이지, 아들 방에 요강 하나 놔 드리고 싶다.





상단사진: Unsplash의 Daniel K Cheung

매거진의 이전글 시크한 김작가의 엣지 있는 금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