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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 Dec 23. 2023

"이 아이 엄마 어디 있어요?"

    

지금은 커다란 곰돌이 같은 아들이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작고 귀엽던 아들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들과 친하게 지내던 아이의 엄마가 있었다. 나보다 2살 많은 언니였는데 가까이 지내며 아이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내서 좋아하던 언니였다.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갈 곳을 찾으면 같이 가자고 제안해 주던 고마운 언니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연말의 토요일이었다. 아이 아빠는 일이 있어 외출을 하고 아이와 함께 집에서 뒹굴 뒹굴 뭘 하고 놀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방문하자고 연락이 왔다. 기다릴 것도 없이 좋다고 승낙을 하고 바로 아이와 준비를 하고 나갔다.


 비 오는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며 수월하게 도착했다. 전쟁기념관의 큰 의미를 모르는 아이들은 본관에 있는 여러 가지 자료들은 그냥 지나치고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어린이 전쟁기념관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여러 가지 시청각 자료와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종이와 색연필도 마련되어 있어서 나름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어린이박물관과 비슷하게 이곳에서도 마지막에는 시청각 자료실에서 짧은 동영상을 감상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기준에 맞게 의자보다는 편안한 방석이 놓여있었고, 아이도 그곳에서 영상을 보고 나와서 이곳저곳을 다시 구경하며 놀고 있었다.


 오랜만에 좀 걸었더니 다리가 아팠던 언니와 나는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며 한쪽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영상을 보는 작은 극장 같은 곳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박물관에 대해서 문의하는 사람들에게 안내도 하는 시니어 봉사활동을 하고 계셨다. 연세가 있으셔도 참 활동적으로 생활하시는 게 좋아 보여서 오랫동안 눈길을 두고 있었던 터였다.


 갑자기 시청각 자료실에서, 아이들의 방석을 정리해 주시던 할머님이 아들의 손을 잡고 나오시면서 말씀하셨다.


 “이 아이 엄마 어디 있어요?”

 “네? 제가 엄마인데요 왜 그러세요?”


순간 아이가 혹시 무슨 잘못을 했을까 하는 마음에 덜컥 놀라서 얼른 손을 들며 아이 엄마임을 알렸다. 그랬더니 일순간 할머님의 표정은 인자한 웃음을 띠며 달라지셨다.


 “아니 글쎄, 이 아이가 내가 방석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뒤에 와서는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까요?’ 이러는 거야! 여태껏 여기서 일하면서 이렇게 물어보는 어린이는 없었는데 너무 기특해서 칭찬해주려고 했지.”

 “어머나 그랬어요?”


잠시라도 아이의 실수가 있었을까 걱정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주 착한 어린이네! 아가야, 고맙다.”


할머님의 웃음과 칭찬에 아이는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싱긋 웃어 보이더니 다시 뛰어다니면서 놀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일들을 마주하게 되지만 가끔씩 이렇게 어른인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고 친절을 베풀 때면 아이보다도 그런 마음이 부족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아이는 아마도 힘들게 일하시는 할머니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그렇다면 도와드려야지 하는 딱 4살 아이의 마음으로 할머니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건넨 한마디의 말로 할머님은 꽤나 감동하셨다. 그렇게 이야기한 아이가 내 아이라는 사실에 감사함과 따뜻함이 밀려왔다.



아이 친구의 엄마가 할머님과 나의 대화를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 멋진데, 성연이 지금 좀 많이 멋있었어!"

"오 그러네요. 언니, 저 지금 무슨 말썽 피웠는지 미리 혼내려고 했는데 성연이 한테 살짝 미안했어요."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이 일만큼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하며 나중에 성인이 된 아이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다.


그 시절 우리 아이는 참 마음이 따뜻하고 예쁜 아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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