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일이다. 대학교 졸업반이었고 취업준비생이었다. 눈만 뜨면 기업의 채용공고를 확인하고 소설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실력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기억나는 기업만 해도 20~30군데의 원서를 썼었고 1차에 합격하거나 면접을 보러 다니며 정신없이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그중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중 한 군데로 1차 합격 2차 합격 그리고 마지막 임원진의 최종면접까지 보고 와서 최종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기업이 있었다. 마지막 면접장에서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면접관의 태도에 사실 한껏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합격 문자를 받고 절대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보내겠노라 혼자 다짐하고 있었다. 24일 오후에 '띵동' 문자가 왔다.(그때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로 아날로그적인 문자로 합격 통보가 왔었다.) 심장이 터질 거 같은 느낌을 다독이며 문자를 확인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귀사에 지원해 주신 열정에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의 어쩌고저쩌고 응원한다는데 나를 떨어뜨린 회사의 응원은 받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 실망하며 쓰린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때마침 외출하셨던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겉옷을 정리하며 집에서 혼자 뭐 하고 있었냐고 면접 결과를 궁금해하시는 눈치였다. 이때쯤 발표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지만 조심스러워서 묻지 못하셨다.
눈물 한 움큼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OO기업 안 됐어 떨어졌다고 방금 문자 왔네, 에이 뭐 어때 남은 기업 많으니깐 다시 원서 써봐야지 뭐."
"어...... 안 됐어?"
부모님은 두 분 다 말을 잇지 못하고 계셨다. 실망한 딸이 속상해 할거 같아서 두 분 다 눈만 꿈뻑꿈뻑하시면서 어쩌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내년 2월이면 학교도 졸업하고 진정한 백수가 될 수도 있는데 취업하는 거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하면서 용돈도 더 많이 챙겨주시고 주말이면 맛집에 가자며 여기저기 외출하자고 하셨던 부모님이셨다. 실망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집에 더 있다가는 바보같이 눈물 바람을 할거 같아서 친구 좀 만나고 오겠다며 서둘러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엄마 나 친구랑 저녁 먹고 올게 늦지 않을 거예요."
"어 다녀와 용돈 있어? 이거 가지고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 다녀와"
엄마는 얼른 지갑에서 몇만 원을 쥐어 주시면서 다녀오라고 하셨다. 눈물이 나올 거 같아서 "앗싸! 봉 잡았다." 하면서 애써 괜찮은 척하며 집을 나섰다. 손에 쥐고 나왔던 돈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울지 않아야지' 아직 떨어질 일이 부지기수일 텐데 뭐 이런 일로 울고 난리인가 울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전철을 탔다.
사실 행선지도 없었다. 그때 만나고 있었던 전 남자친구, 현 남편이 생각났다. 남편도 그때는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던 시기여서 위로해 달라고 섣불리 불러낼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럴 때 위로받고 싶은 사람은 남자친구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전철을 타고 남자친구 학교 앞으로 가서 무작정 문자를 보냈다. 몇 주 전부터 바쁜 걸 알고 있었기에 못 만나고 있던 상태였다.
'나 학교 앞인데, 잠깐 나올 수 있어? 그냥 왔어.'
'학교 앞? 지금 마침 저녁 시간이야. 나갈게 잠깐 기다려'
남자친구(현 남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왔다. 그리고는 학교 앞에서 제일 맛있는 파스타 집이라면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왜 왔냐고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눈치는 하나는 정말 빠르다. 열심히 먹고 있다가 후식을 먹고 배가 어느 정도 찼을 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왜 왔는지 안 물어봐?"
"무슨 일이 있으니깐 왔겠지 그냥 이렇게 불쑥 오는 애가 아니잖아"
"떨어졌어 최종면접 불합격 했다고 문자 받았어, 크리스마스이브에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지나서나 보내주던가. 아 갑자기 또 확 열받네."
"괜찮아 원서 다시 쓰면 되고 또 하면 되고 아무 일도 아니야."
"어느 회사인지 어떤 분야 썼는지 그런 거 안 물어봐?"
"너...... 말하고 싶지 않잖아 말 안 해도 돼, 나중에 이야기하고 싶으면 그때 해.
오늘은 그냥 맛있게 먹고 가. 시험만 아니면 같이 바람이라도 쐬러 가면 좋을 텐데 너무
중요한 시험이라서 집에도 못 데려다주고 혼자 가게 해서 미안해."
"아니야 내가 연락도 안 하고 그냥 왔는데 뭐 괜찮아...... 고마워."
끝내 어떤 회사인지 무슨 부서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 대기업 회사의 제품을 보면서 혼자 울그락 불그락 이 망할 놈의 회사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를 떨어뜨리고 난리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그 회사 제품을 사고 계산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남자친구는 욕하면서 사는 건 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고 돌아오면서 다짐했다. 올해는 이걸로 모두 액땜했다고 내년에는 내 반드시 기피코 합격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집에 와서는 다시 여러 기업체의 공채를 모두 정리해서 리스트업 하고 다시 소설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런 굴욕은 내게 다시없다는 일념으로......
그 다음 해 봄, 우리 집에는 내 한품으로 안을 수도 없는 풍성한 장미 꽃바구니와 함께 내가 입사할 회사의 배지가 도착했다. 그동안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귀댁 자녀의 합격을 축하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겠다는 문구의 카드와 함께 말이다. 마침내 최종합격이었다.
이듬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막 시작 될 무렵 나는 캐리어를 끌고 연수원에 들어갔다.
그 꽃바구니와 배지를 받고 너무 기뻐하셨던 부모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합격 소식을 전해 듣고 축하한다며 큰 소리로 외쳐주었던 남자친구의 음성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질 만큼 오래전의 일이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가족과 함께 복닥 거리는 연말을 보내고 있으면 가끔씩 생각나는 20대의 겨울 중에 하루이기도 하다.
시리고 많이 힘들었던 겨울이었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이겨냈다는 안도감에 20대의 내 모습이 가끔씩 생각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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