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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 Apr 16. 2024

아빠가 남긴 유산

일전의 글에도 썼었던 4명의 친구들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었는데 내 인생을 이야기할 때 그 친구들을 빼놓고서는 어떤 페이지도 채울 수 없을 만큼 값지고 소중하며 절대적인 존재의 친구들이다.


아빠의 친구분들께 부고를 알리는 연락을 모두 하고 난 뒤에 그 친구들이 함께 있는 카톡방에 부고장을 올렸다. 아빠의 긴 투병 소식을 모두 알고 있던 친구들이었고, 치료하는 동안 호전되고 있으신 건지 안부를 물어오고는 했었다. 그리고 조금씩 악화되신 아빠의 상태에 경황이 없어서 친구들과 연락을 한지도 수일이 지난 후였다. 


부고장을 받고 전화를 한 친구는 울먹이며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다. 고1 때 이어 고3 때 똑같은 반이 된 걸 알고는 복도를 뛰어다니면서 기쁨을 표현했던 친구였다. 그렇게 고3 수험생활을 하며 우리 아빠와 친구의 어머니가 함께 등하교를 책임져 주셨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셔야 하는 아빠가 항상 아침 시간에 우리를 데려다주셨고 저녁시간에는 친구의 어머니가 집까지 항상 안전하게 데려다주셨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렇게 고3 시절을 외롭지 않게 보냈었다. 


대학교에 가서도 서로의 집에서 자고 오는 건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친구집에서 자고 와도 되지만 아침에 '계란 프라이'는 꼭 해주어야 허락해 주겠다는 아빠의 장난스러운 전화에 신이 나서 통화를 하고 내 대신 허락을 받아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만큼 이 친구들과 가는 여행과 일상은 부모님들 사이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프리패스가 되곤 했었다. 


서로의 대학 졸업식, 결혼식 그리고 아이를 낳은 조리원까지 항상 찾아와서 기쁨을 함께 해주었던 친구들이었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에 따라 해외에 있는 친구는 가보지 못해 미안하다며 울먹였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멀리 살고 있는 친구에게는 장례식장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도 네 마음 다 알고 있으니 아이 잘 보고 있으라고 미리 말해두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친구들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었다. 


한바탕 아침 시간이 지나가고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과 형부 앞으로 속속들이 근조 화환이 도착했다. 퇴직하고 나니 소속감이 없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근조 화환 하나 내 이름으로 오는 곳이 없구나라는 잠시 얄팍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착한 근조 화환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잘 보이도록 배치하며 장례식장을 정돈하고 있었다. 잠시 나갔다 왔는데 형부가 처제 이름으로 근조 화환이 도착했는데 어떤 분이 보내 신건지 모르겠다며 확인해 보라고 했다. 


"제 이름으로요?  퇴직했는데 저한테 보냈을리는 없는데 누굴까요? 어디 있어요?"

"저기 있는 저 화환이야."

"아......"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 그 친구들이었다. 


화환을 보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누가 보냈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었다. 서로의 부모님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부모님이셨다. 그때 친구의 전화가 왔다. 


"근조 화환 이거 너희들이 보낸 거지?"

"잘 도착했지? 우리 모두의 아버지셨어. 우리 5명 누구도 사랑한다고 곰살 맞게 말하는 성향이 아니잖아.

이렇게라도 이야기하고 잘 보내드리자. 일단 잘 도착했으니. 끊자! 나 얼른 출발해야 해. 좀 있다 만나."


그렇게 내 이름 앞으로 발송된 제일 멋있고 근사한 근조 화환을 받았다. 아니 아빠가 받은 것이다. 잘 키운 5명의 딸들이 아빠 가시는 외롭지 마시라고 사랑한다는 말로 따뜻하고 간지러운 인사를 하며 보내드리고 있다. 각종 업체의 이름과 근엄한 회사의 대표자 이름이 쓰여있는 근조 화환 중에서 가장 묵직한 존재감을 뽐내며 그렇게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뒤에 친구들이 도착했다. 친정엄마를 보면서 안기고 우는 친구, 그렁그렁 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 하는 친구 그리고 어린아이를 키우는 친구까지 모두 모였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아이를 데리고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건 무리 일거 같다면서 친정아버지까지 같이 장례식장에 오셔서 우리가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장례식장 휴게실에서 돌도 안된 아기를 돌봐주고 계셨다. 대학생 때 전국 각지에 콘도를 예약해 주시면서 즐겁게 놀고 오라고 항상 세심하게 챙겨주셨던 친구의 아버지셨다. 


한바탕 눈물바람을 하고 한 상에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고, 슬픈 이야기도 잠시 요즘 지내는 이야기 그리고 와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까지 하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아빠를 추억하고 보내드렸다. 


친구들을 보내면서 생각했다. 아빠가 내게 남겨준 가장 귀중한 유산은 이렇게 좋은 친구들, 따뜻하고 멋진 친구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 혼나고 입이 쑥 나와서 만나면 아무 말 없이 동네공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정처 없이 함께 걸었던 그 친구들이 이제는 아빠가 가는 마지막 길을 함께 해주고 있다. 


그 시절 그 동네에서, 그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그 친구들과 유년시절을 보내고 난 지금도 그 친구들과 일생을 함께 하고 있다. 


아빠가 남겨주신 최고의 유산이다. 


아빠! Thanks!



상단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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