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고등학교 시절 8명은 모임이 따로 있었다.
그 이름 하야 '팔장회 (여덟 명의 장남들이 모여서 붙여진 이름이다.)'이다. 너무 원초적이고 정직하게 붙여진 이름이라서 엄마가 그 뜻을 설명해 주셨을 때 깔깔거리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아빠의 친구분들 집에 같이 놀러 갔었고 내가 막내였기 때문에 언니 오빠들이 재미있게 놀아줬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곤 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가 '팔장회' 모임을 나간다고 하시면 며칠 전부터 스케줄을 조정하시고 들뜬 모습으로 나가셨었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그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쁨에 아이처럼 설레하는 모습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아빠의 고등학교 추억들은 시대극으로 나오는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아빠는 뜨거운 음식을 빨리 먹는데 능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뜨거운 만두 빨리 먹기를 해서 늦게 먹는 사람이 만두 값을 모두 내는 내기를 하면 항상 마지막까지 다 먹지 못하는 아빠의 친구분 한분이 만두 값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만두를 다 먹은 친구들은 후다다닥 도망가면서 "만두값 계산하고 와라!" 하면서 뛰어 나가면 남은 친구분은 "아우 또 나야!"이러면서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가방에서 주섬 주섬 비상금을 모두 털어서 만두값을 계산하고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 다른 친구들은 "음료수는 우리가 사줄게"하면서 다른 가게에 또 시끌벅적 뛰어 들어가서 군것짓을 하고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50년 넘게 이어온 친구들의 우정이었다. 중간에 연락이 끊긴 분들도 계셨지만 그래도 팔장회라는 이름아래서 아빠의 친구분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하셨고 이제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된 중년의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 하고 계셨다.
그랬던 친구가 긴 여행을 먼저 떠났다.
아빠 친구분들의 슬픔이 어떠했을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얼굴은 익숙하지만 성함과 잘 매치가 되지 않았던 친구분들과 배우자분들이 도착하기 시작하셨다. 엄마는 반가움과 애통함을 동시에 내 보이시며 조문객들을 맞이하셨다. 다들 아빠의 투병 소식을 모르고 계셨기 때문에 상기된 얼굴로 장례식장에 도착하셨고, 아빠의 영정사진 앞에서 어떤 말도 쉽게 꺼내지 못하셨다.
오히려 엄마는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걱정만 끼치고 다들 아픈 친구 이야기 들으면 뭐 좋겠냐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더라고요.
다들 많이 놀라셨죠. 많이 힘들어하다가 갔어요."
"아니 그래도 우리한테 한마디라도 하지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얼마나 놀랐는지...... 어이구......
이 사람아......"
아빠 친구분들은 안타까움 섞인 원망을 하면서 조문을 하셨고 이내 엄마와 함께 자리를 하시면서 지난날의 이야기와 아빠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계셨다. 그래도 한숨에 달려와서 슬퍼하는 친구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으니 아빠도 먼 곳에서 좋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팔장회'의 친구분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계시는 동안 손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으면서 장례식장으로 들어오시는 분이 계셨다.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빠의 '팔장회' 친구분 중 한 분이셨다.
제주도에 노년을 여유롭게 보내고 싶으시다며 도시에서 삶을 모두 정리하시고 제주도에서 요양하면서 지내고 계셨던 친구분이셨다. 칠순이 넘은 나이의 중년의 아저씨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커다란 키에 마르신 체형의 친구분은 창백해진 얼굴로 아빠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그렇게 슬프게 눈물을 흘리셨다. 아빠 친구분들과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가 오신 엄마는 아빠 친구분이 우시는 모습을 보고는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많이 놀라셨죠. 제주도에서 바로 올라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많이...... 놀라셨을 거에요."
"나는 상상도 못 했어요. 아니 한동안 연락도 뜸하고 모임에도 안 나와서 다들 왜 그러는지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이렇게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요."
"그러게요. 친구들한테 이야기 좀 하지...... 다들 너무 놀라셨어요. 이리 오셔서 앉으세요."
그렇게 마지막으로 오신 아빠 친구분들은 3일 내내 장례식장의 한 자리를 든든하게 채워주셨다. 그 다음 날도 발인하는 날도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서 그렇게 묵묵히 함께 자리를 해주셨다.
깐깐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항상 정확한 삶을 살려고 하셨던 아빠는 마지막까지 친구들한테 아프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고 그렇게 무심하게 가셨다. 그래도 마지막에 함께 해준 친구들 고맙다고 보고 계셨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한편이 묵직하게 아려왔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해야 하는 순간에 아빠 친구분들은 가족들의 뒤편에 서서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잘 가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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