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유난히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부모님의 결혼식이 가을이었고, 나의 결혼식도 가을이었으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내 드린 계절도 가을이었다. 남편과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고 부모님과 만난 상견례 자리에서 어색함을 풀어보고자 아빠가 먼저 꺼낸 이야기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참 좋다는 말씀이었다.
"아이들 결혼은 10월 중순으로 잡으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가을이 참 좋은 계절이죠.
저희 결혼식도 가을에 했고 어머님을 가을에 보내드리긴 했지만 그래도 가을은 참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가을에 결혼하다고 하니 가을이 좋아지는 이유가 또 한 가지 늘어났네요."
시아버님은 말씀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셨지만, 가을이 좋다는 아빠의 말씀에 기분 좋은 웃음을 띠시며 아주 좋은 계절이라며 긍정의 뜻을 내보이셨다. 가을은 그렇게 나에게도 참 좋은 계절이다.
가을의 한복판에서 아빠를 보내드리고 왔다. 평소에 좋아하시던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산 좋고 공기 좋고 물이 흐르는 곳으로 아빠는 미리 본인이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는 곳을 보고 오셨다. 단풍이 들이 시작한 거리는 아름다웠고 아빠를 보내드리기 위해서 달리는 차 안이지만 '참 좋은 날씨구나......'라는 감탄사가 연거푸 나왔다.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부터 항상 말씀하셨었다. 납골당도 제사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그냥 내가 떠난 날 가족들이 모여서 즐거운 밥 한 끼 하면서 그렇게 추억하면 그뿐이라고 필요 없는 허례허식은 시작도 하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이야기하셨었다. 결혼하고 30년 넘게 제사를 준비하고 차례를 준비하셨던 엄마의 노력과 공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알고 있는 부분에서 만큼은 아빠는 괜찮은 남편이었다. 엄마도 지금까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시다. (다른 부분은 이견이 아주 많으신 걸로 알고 있다.)
엄마와도 평소에 그 장소를 여러 번 다녀 가셨다고 한다. 나는 처음으로 가본 장소지만 보자마자 느꼈다.
"참 좋다. 마음이 편안해지네......"
아빠는 그렇게 자유롭게 떠나셨다. 아프지 않고 편하셨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에 있던 묵직한 돌덩이가 내려가는 거 같았다. 이제야 비로소 아빠는 자유로워지셨다.
모든 과정을 끝내고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아침부터 발인 후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다들 한숨 돌리고 나니 허기가 밀려왔고 아이들도 지치고 배고프다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서둘러서 집 근처의 고깃집으로 가자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다들 힘들었지...... 너무 힘들었으니깐 저녁 맛있는 거 먹자 아빠가 항상 장례식 하고 나면 제일 좋은 거
맛있는 거 즐겁게 먹으라고 했으니깐 든든하게 잘 먹고 돌아가자. 우리 자주 가던 그 갈빗집으로 가자"
"알겠어요 출발, 출발, 갑시다!"
음식점에 도착하니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주차하느라 조금 늦게 들어갔는데 먼저 들어갔던 언니와 형부와 엄마가 깔깔거리면서 웃고 계셨다. 웃느라 정신없는 언니에게 물었다.
"왜 그래? 왜 웃고 그래?"
"이제부터 어른 6명이란 말은 금지야!"
"어? 무슨 말이야?"
"우리 맨날 식당에 들어가면 어른 6명에 아이 2명이요 했잖아. 근데 우리 지금 봐바
어른 몇 명이야? 우리 어른 5명이잖아. 아하하하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족들이 다 헛웃음이 터졌다. 장례식을 치르고 와서는 배고프다면서 아무 생각 없이
'어른 6명이요!'라고 외치고는 '어? 아닌데 5명인데' 하고 생각 하고는 난감한 상황에 어느 누구 하나 인원수를 바로 잡지는 않았다. 이를 어쩌지 하면서 당황 스럽게 자리에 앉아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을 뿐이다.
한바탕 웃고 "어른 6명 금지 이제부터 어른은 5명!"하면서 신나게 웃고는 전투적으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다들 아무 말도 안 하고 뒤적뒤적 고기를 굽고 자르고 "판 갈아주세요"소리 지르면서 열심히 먹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발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항상 좋은 음식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먼저 이야기해 주셨던 아빠 모습이 생각이 났다.
지금은 이렇게 웃고 있지만, 갈비를 구우면서 이렇게 웃고 있지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기에 이후에 오는 슬픔의 강도를 짐작할 수도 없다.
그냥 문득문득 생각나면서 눈시울이 빨개지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바보처럼 훌쩍훌쩍 그런 날들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은 조금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오늘은 가족들끼리 아빠를 잘 보내드리고 한바탕 웃으면서 마무리했다.
이제부터 우리 집의 어른은 5명이다.
사진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