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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 May 09. 2024

사실은 말입니다.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첫 번째 이야기

자식이 부모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난받을 일 일 것이다. 불효녀다.


하지만 솔직하게 난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때때로 많이 싫어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지간하게 깐깐한 사람보다도 몇 배는 더 깐깐한 성격에,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는 소리를 벼락같이 질러대는 그 성질머리가 너무 싫었다. (버릇없는 표현 한 번만 쓸게요. 아빠 죄송합니다.) 어릴 적부터 아빠의 기분에 따라서 좌지우지되는 집안의 분위기도 싫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퇴근하고 들어오시는 아빠의 기분에 따라서 눈치를 보기 시작했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엄마는 그렇다고 그런 아빠의 성격을 감내하고 모든 것을 수긍하는 순종적인 성격의 아내는 아니었다. 대적해서 싸우는 엄마였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는 성향의 엄마여서 그 긴 세월을 함께 사실 수 있었던 거 같다. 우리 엄마는 그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 부모님의 싸움은 더 빈번해졌 가뜩이나 예민한 성향이었던 나는 시절 항상 배가 아프고 감기를 달고 살았던 아이였다.


어느 날 배탈이 너무 자주 나고 항상 아프다고 하는 나를 데리고 엄마가 병원에 가니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학생 뭐 스트레스받는 일 있어요?"라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대답도 잘 안 하고 그냥 얼버무리면서 진료를 보고 나왔는데 그날 밤 부모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신아가 스트레스성 과민성 대장염 같다고...... 우리 싸우지 말아야 돼...... 애가 계속 아파"

"......"


이런 대화 끝에 조금이라도 부모님의 관계가 나아졌을까?


전혀 아니었다.


지붕 뚜껑이 날아갈 만큼 소란스러운 날들의 연속이었고, 난 그 속에서 내가 살길을 찾아야 했다. 어차피 내가 개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먼저 살아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외면해 버리고 마음속에서 차단해 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냉정하리만큼 아무런 말도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없이 넘어가는 듯했지만 속으로는 참 차가운 계집애였던 거 같다.


외로웠고 쓸쓸했으며 안정감을 찾을 수 없었던 청소년기였다.


그래도 그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엄마 덕분이었을까? 난 누가 보기에도 구김살 없이 여유로운 환경에서 잘 자란 학생으로 그렇게 보일 수 있게 성장했다. 나도 나이를 먹고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그 정도 부부싸움 안 하고 사는 부부가 있었을까?' 곱씹어서 생각해 보긴 했다. 하지만 보통의 범주를 넘어선 정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 건, 가끔씩 큰 싸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자식들 잘 키우려 노력하는 부모님 덕분에 부족함 없이 청년기를 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으로서 부모가 이 정도 지원해 줬으면 감사할 따름이지 라는 생각을 한다.


아빠가 정한 규칙과 범주에 대해서 언니는 그래도 첫째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수용하고 잘 지켰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면 해야 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았다. 쓰고 보니 나도 참 착한 딸내미는 아니었던 거 같다. 학생의 신분에 벗어나거나 탈선하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나름의 고집을 부렸으니 조용한 반항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학시절 통금 시간이 있었음에도 지키지 않았다. 시간을 더 앞으로 당기는 아빠의 호통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빨리 들어오라는 아빠의 전화에 반격하기 시작했다.


"아빠! 내가 지금 20대 초반의 이 청춘의 나이에 집안에만 박혀 있으면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더 놀다 들어갈 거야!"


아빠는 어안이 벙벙하셨는지 전화를 끊고 그냥 주무셨다고 한다. 어디서 뭐 이런 놈이 나왔나 싶으셨을 거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엄마랑 언니가 한 목소리를 내서 내게 하는 말이 있다.


"너랑 아빠랑 똑같아!"


아빠랑 너무 똑같아서 난 그렇게 아빠가 싫었던 걸까? 어느 포인트에서 기분이 상하고 이건 도를 넘었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 어딘가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고 있을 때면 난 그냥 그 줄을 끊어버리는 쪽을 택했던 거 같다. 지금 보니 아빠랑 똑같다. 이런......


그런 아빠가 투병생활을 하시는 동안에도 나는 착한 딸은 아니었다. 병실에서 소리치며 싸운 적도 있었고 도대체 왜 그러시냐면서 엄마 좀 그만 괴롭히시라고 한 적도 많았다. 많이 부딪혔다. 그리고 그런 상황 뒤에는 마음이 항상 편치 않았다. 이런 나를 보면서 남편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좀 잘해드리라고 매일 이야기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찌나 못됐는지 난 그렇게 착하게 굴던 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후회하면 뭐 하겠는가......


아빠가 떠난 후에 생각해 보니 그래도 자식들 귀한 줄 알고 헌신적이고 따뜻한 부분도 많았는데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한다.


천하의 못된 딸내미다. 좀 잘해드릴걸......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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