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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 May 13. 2024

뽀로로 키즈 카페에서 '엉엉' 울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그다음 해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그 해 겨울의 끝자락에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를 낳자마자 허리를 크게 다쳐서 아파하고는 아이가 예쁜지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은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갔다. 다행히 아이는 잘 크고 있었고 어린이집에 적응도 잘해서 이제 조금 숨을 쉴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었다.


큰 아이는 학원에 가고 한가한 주말 아침에 둘째 아이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뽀로로 키즈 카페에 갔다. 생각해 보니 둘째 아이는 코로나 시국에 태어난 아이라는 핑계로 외출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첫째 아이 때에는 혈기 왕성한 30대 초반이었으니 주말이면 집에 붙어 있지를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지간해서는 외출하는 일을 만들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집안에서 뱅뱅 돌며 놀고 있는 둘째 아이가 불쌍했다. 그래서 큰 결심을 하고 뽀로로 키즈 카페에 갔다.


오랜만에 간 키즈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느꼈다. '아 두 시간 동안 이 한 몸을 불살라야겠구나......' 역시나 활발하고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의 둘째 아이는 키즈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여기 뛰고 저기 뛰고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있지 않았다. 남편은 이미 들어갈 때부터 기력이 달려서 '헉 헉' 거리고 있었고 아이를 쫓아다니고 순서를 지켜서 놀이기구를 탑승시키고 체험을 하는 것만 해도 큰 일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던 아이가 힘들었는지 물도 먹고 싶고 배도 고프다고 하여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고 앉아서 먹으면서 좀 쉬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테이블에 친정 부모님과 함께 온 아기 엄마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친정아버지가 등을 돌린 채 손주를 안고서 딸에게 이야기하셨다.


"어서 너부터 커피라도 좀 마셔. 내가 OO이 안고 있을 테니깐 화장실도 가고 싶으면 다녀오고."

"아빠 나 괜찮아 아빠 이거 좀 드세요. OO이 이리 주세요 내가 안을게!"

"아이고 됐어 됐어 너나 어서 앉아 너 힘들어"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그 중년의 친정아버지의 뒷모습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와 너무 흡사해서 순간 나도 모르게 '아빠랑 너무 비슷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둘째 아이에게 물을 먹이려고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다가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남편이 나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둘째 아이는 옆에서 간식을 열심히 먹고 있었고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날 리가 없는데 도대체 이 사람이 왜 그러는 건지 하는 표정이었다.


"왜? 왜? 어? 왜?"

"저기 앉아 계신 아저씨 있잖아. 아빠랑 너무 비슷하게 생기셨어 뒷모습이 비슷해.

아빠 생각나......"

"...... 어 근데 장인어른이랑 비슷하긴 하시다"


남편은 어찌해야 할 줄 모르겠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꽤나 애절하고 사이좋았던 부녀지간인 줄 알 것이다. 사실 제일 많이 부딪치고 비슷해서 서로 언성을 높이는 적도 많았던 부녀지간이었다. 그런 아빠였지만 내가 첫 아이를 낳고 아이를 봐주러 집에 오실 때면 한없이 너그러우셨다. 아이 이유식하고 집안일에 내가 바삐 움직이고 있으면 슬그머니 손자를 안아서 품에서 재우고 계셨었다.


"이제 좀 여기에 내려놓으셔도 돼요 아빠. 아무리 아기라도 해도 무거워서 이제 힘드세요."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더 안고 있어도 괜찮아. 더 푹 잠이 들면 그때 내려 둘께"


시끄럽고 정신없는 상황 자체도 싫어하시는 아빠였지만 손주들이 우는 소리나 집안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뛰어다니는 소리는 한없이 인자하게 바라보셨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엄마도 신기하셨나 보다.


"아이고! 소란스러운 거 싫어하는 양반이 아이들 떠들거나 하는 소리는 어찌 그리 잘 참으시는지......"

"애들이 없으면 집이 절간 같잖아. 이렇게 시끌 시끌해야지......"


하지만 아빠는 우리 집에서 제일 시끄러운 둘째 딸아이의 존재도 모르시고 긴 여행을 떠나셨다. '적적하지 말라고 아빠가 보내주신 걸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그 다음 해의 봄에 둘째 아이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먼저 간 아빠의 자리가 짐짓 허전할까 봐, 친정 엄마 정신없이 보내시라고 그리고 가족들 북적거리게 살라고 한 명 더 보내주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지나가는 말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진짜 둘째 보내주신 거 같아......"

"왜?"

"아빠랑 띠도 똑같고, 혈액형도 똑같거든!"

"이야! 듣던 중 세상 개연성 없는 이야기다. 그래도 뭐 장인어른 생각하면서 잘 키우면 되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가셨을 거야 손주가 한 명 더 생길 거라고"


나도 꿈에도 몰랐다.


내가 뽀로로 키즈카페에서 이렇게 울거라고 말이다.


'에잇, 나도 아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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