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멀리 여행을 떠나신 지 5년이 다 돼 간다.
30대 후반이던 딸들은 어느새 40대 초반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렸고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았던 우리 집 큰 아들은 어느새 엄마의 어깨를 훌쩍 넘겨버린 키의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아빠가 존재조차 모르고 가셨던 둘째 딸아이의 등장일 것이다.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엄마 누구야?"라고 물어보는 이 아이를 얼마나 예뻐하셨을지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시큰해지는 건 몇 해가 지나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매년 늦가을이면 국화꽃을 사서 가족들과 함께 아빠를 보내드렸던 그곳으로 간다. 처음 2~3년 동안은 둘째 아이가 어려서 차를 타고 장거리를 가야 하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가지 못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총총총 뛰어다니는 작은 아이도 사촌언니와 오빠의 손을 잡고 함께 다녀온다. 매년 아빠를 만나러 갈 때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께 인사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긴다. 어느새 부쩍 커버린 아이들의 모습과 열심히 쫓아가는 둘째 아이의 모습을 보며 더 오랫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아빠의 존재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
아빠를 만나러 가는 그 길은 단풍이 물들어 가족끼리 여행을 갔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사위와 손주들까지 모든 가족구성원이 여행을 갔던 단 한 번의 기억이지만 엄마, 아빠는 무척 즐거워하셨다. 아침부터 많은 음식을 준비해 오셨고 리조트에 도착해서는 특별한 일정 없이 그저 리조트 주변을 여유롭게 걸어 다녔던 그 시절의 기억이 아련하다.
나는 내 나이 마흔이 되기 전에 아빠가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필요했다.
아직도 가끔씩 핸드폰 속에 저장되어 있는 아빠의 사진과 동영상을 볼 때면 가슴 한쪽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진다. 어딘가에 계실 거 같은 느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다 보고 계실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남편은 핸드폰 속에 저장되어 있는 아빠의 영상을 볼 때마다 너무 생생한 느낌이어서 더 슬프다고 했다. 70대 초반의 아빠 모습과 그 속에서 뛰어놀고 있는 큰 아이의 7살 모습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칠 때쯤이면 단골 꽃가게에 들러서 대국을 주문한다. 매년 주문하는 꽃이기에 사장님도 이맘때쯤이면 으레 오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면서 반겨 주신다.
"예쁜 대국으로 부탁드려요. 5송이요."
"올해도 가시나 봐요. 준비해 놓을게요."
휴게소에 들러 둘째 아이에게 솜사탕도 사주고 맛있는 간식도 먹는다. 꽃을 들고 가는 아이들은 종알 종알 무슨 이야기를 그리 하는지 모르겠다. 납골당도 제사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그저 내가 간 그날을 기억하며 가족끼리 모여서 이야기하고 맛있는 식사 한 끼 하면 된다고 말했던 아빠의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아빠를 기억하고 있다. 매년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드릴 것이다.
아빠가 떠나신 후 내게 생긴 한 가지 버릇이 있다면 힘들거나 절실하게 원하는 게 있을 때 아빠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만 아빠를 찾아대는 고약한 둘째 딸일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아빠가 필요하다.
너무 간절해서 감히 입 밖으로 꺼내기 조차 조심스러운 그런 원하는 바가 있을 때는 어김없이 아빠를 찾는다. 아빠가 보고 있다면 내 간절한 바람을 들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말도 예쁘게 안 하고 뾰족하게 굴던 일들이 생각나서 사뭇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럴 때 자식은 영원한 내 편인 아빠를 찾게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주말이면 우리는 아빠를 만나러 갈 것이다.
예쁜 대국을 들고 종알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아빠를 보내드렸던 그곳에 가서 지난 일 년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올 것이다.
그곳에서의 아빠의 삶이 평안하게 흘러가기를 그리고 우리 가족들의 삶도 잔잔하게 흘러가기를 바란다.
상단사진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