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RASA Mar 09. 2017

#10. 자존심 - 내려 놓음

마음 비우기

" 언니, 나 진짜 자존심 상해서 회사 못다니겠어요. "

" 무슨 일인데 그래? "

" 언니 저 둘째 임신한거 아시죠? 복귀 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 임신해서 그런지 자꾸 쉬운 일만 맡겨요. 저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들은 교육도 받으러 가고 중요한 프로젝트에 배치 되는데 전 허드렛일만 하고 있어요. "


외국계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내 친구 J는 꿈과 야망이 가득한 열혈 커리어 우먼이었다.

나보다 4살이나 어린 동생이지만 본인 일에 자부심도 상당하고 항상 늦은 시간까지 야근 해가며 완벽하게 일 처리 하려고 노력하는 능력자였다. 게다가, 첫 째 아이를 임신했을 당시에도 어찌나 열심히 회사 일에 매달리는지 책임감도 대단했지만 출산 휴가 들어가기 바로 직전까지 야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하다고 생각 했었다.  


그런 그녀가 육아 휴직 후 복귀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 둘 째 아이를 임신하게 된 것이다.

첫 째 아이 임신했을 때만 해도 업무적으로 배제되는 일이 없었는데 둘 째 아이 임신 후 눈에 띄게 배제 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신입사원들이 하는 업무 위주로 맡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 하소연 한 것이다.


일 욕심 많고 자존감 높은 그녀로서는 견딜 수 없는 굴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나 또한 임신 했을 당시 비슷한 일을 겪었던 터라 상처도 많이 받았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었다.

사실 자존심 상한 것보다 더 불안했던 것이 구조조정이었는데 당시에 혹시라도 구조조정 1순위가 될까봐 기를 쓰고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버텼던 경험이 있었다. 업무적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퇴근 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기 때문에 몸이 견뎌내지 못하고 조산기가 와서 병원에 한달 정도 입원하고 출산 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미련한 짓이었는데 당시에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나의 노력은 눈물 겨울 정도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내가 J에게 조언할 수 있는 말은 욕심을 버리고 다 내려 놓으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구조조정 되지 않고 자리를 보존하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 요지였다. 나와 같은 업종에 근무하는 J도 우리 업계가 얼마나 심한 불황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J가 육아 휴직으로 쉬고 있을 때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을 실행 했었기 때문이다. 


J도 나의 조언에 동의하지만 아직 가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았다.

나 또한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욕심을 내려놓고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 방황했지만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돌아보면서 현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 욕심을 버리는 것이 어렵지, 일단 내려 놓으면 회사에 소속되어 정기적인 급여를 받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생각되어 허드렛일도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일하는 나의 경우는 그렇다는 것이다.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최소한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 육아 비용으로 월급을 통째로 지불하더라도, 혹은 업무적으로 차별 받는 것이 억울하더라도 요즘처럼 경기 불황이 심한 때에는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런 와중에도 능력 좋으신 분들은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기도 하지만 나의 경우 우선 상황을 지켜 보면서 경력을 유지하는 쪽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올해도 우리나라 경제사정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워킹맘으로서의 생할을 유지해야 할 것 같다.

(아마 J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버티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9. 전업주부가 아닌 워킹맘을 선택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