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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SA Mar 14. 2017

#11. 남편, 남의 편?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만 그런건지 아니면 한국 남자들의 일반적인 성향인건지 모르겠지만 결혼하여 부부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아내는 내 편인지 남(의) 편인지 구분 안가는 어린 아이 같은 남편의 유치한 행동과 태도에 어이 없을 때가 종종 있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아내에게 대하는 태도가 결혼 전과 사뭇 달라지면서 본인 편할 대로 행동하고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 놓으면서 아내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보면 정말 말 안 듣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처럼 느껴져서 다 큰 아들을 하나 더 키우는 기분이 들 정도다.

자식은 말 안 들어도 귀엽고 예쁘기라도 하지, 남편은 예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못생겼다.




대표적인 경우가, 결혼하면 둘도 없는 효자가 되면서 본인 부모님을 끔찍하게 챙기면서 효도를 아내에게 강요 한다거나 아내가 맞벌이로 가정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집안 일과 육아는 여자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여러가지 상황과 경우의 수가 넘쳐나는데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많다.

무엇보다 아내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경우는 말도 안되는 똥고집을 부려서 절대 말이 안 통하는 때가 있으니 그런 때에는 속된 말로 미치고 팔딱 뛸 정도로 답답함을 느끼며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하게 만들어 버리는 강력한 한방을 날릴 때다. 나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는데 그때마다 복장 터져 홧병 날것 같아서 정신 건강을 위해서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 남편을 어떻게든 다뤄보겠다고 윽박도 질러보고 아이 다루듯이 살살 달래기도 해보고 칭찬도 해가면서 정상적인 사고로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한번에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비슷한 상황이 여러 차례 발생 될 때마다 정신수양 하는 마음으로 계속 주지 시키고 쇠뇌 시켜야 간신히 아내의 힘듦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판단하는 것 같다.




작년 11월에 결혼한 친구 H는 잦은 야근과 과중한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남들 다 걸리는 감기 한 번 안 걸릴 정도로 본인 건강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H는 결혼한 지 얼마 안됐을 때 조금씩 잔병치레를 하기 시작했다. 결혼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H에게 급여는 조금 적게 받더라도 편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권유했으나 선뜻 직장을 옮길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이유인 즉슨, 남편은 내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H의 남편은 어린시절 부터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 된 강한 생활력으로 무장한 꽤 능력있는 고액 연봉자다. H도 상대적으로 본인보다 생활력이 강한 남편의 매력에 이끌려서 결혼을 결심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경제적인 관점에서 서로의 가치관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신혼초 부터 속앓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H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음에는 같이 살면서 본인 돈은 전혀 안 쓰고 남편의 돈으로 모든 생활비며 공과금을 해결하니 좋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의 소비습관이 문제가 있는 것을 깨닫고 돈 씀씀이를 줄여보자고 제안 했으나 남편이 한방에 거절하면서 한 말이 기가 막혔다고 한다.


내가 너보다 훨씬 돈 많이 버는데 왜 너에게 돈을 맡겨야 되지?
내 돈 내 마음대로 사용하겠다고 하는데 너한테 돈 맡겨 놓고 자존심 상해가며 조금씩 돈 타내기 싫어.



남편과 달리 H는 알뜰하고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성격이라 본인 돈과 남편의 돈을 합쳐서 잘 관리하여 노후를 준비하자고 설득했으나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이 문제로 계속 싸우게 되면 부부 관계가 악화 될 것 같아서 일단 현 상황을 유지한 채 지켜보고 있다. 


H가 힘들어도 직장을 계속 다니는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편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본인 나름대로 노후를 준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남의 편이 아니라 내 편으로 여겨졌다면 잠시 직장을 쉬거나 좀 더 편안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겼을 것이다. 




이건 다른 경우인데, K는 전업주부로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잘 키우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이미 임신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K가 꿈꾸던 대로 전업주부로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 키우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1년 정도 지났을까... K가 시간제 공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남편이 돈 좀 번다고 유세 아닌 유세를 부려서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 쓰던 K가 자존심 상해서 직장을 가진 것이었다. 얼마 안되는 돈을 벌지만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를 그나마 덜 할 수 있어서 앞으로도 쭈욱 직장을 다닐 것이라고 한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폐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인 P는 8살 연상의 남편과 2년 전에 결혼을 했다. 

결혼하고 1년 정도 지났을까... 슬슬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던 중 생각보다 쉽게 임신이 되지 않자 P의 남편은 본인 나이는 고려하지 않고 P의 나이가 많아서 임신이 안되는 것이라고 어거지를 부려서 P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존감이 낮은 P는 정말 본인 때문에 임신이 안되는 건가 싶어서 남편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아무래도 원인을 알아야 임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난임 전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남편의 문제로 임신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P는 너무나 건강하고 좋은 결과가 나와서 언제든 임신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P는 남편의 문제 때문에 임신이 안되는 것을 알고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어쨌든, 남편과 합심해서 임신을 하고자 했으나 P의 남편은 여전히 술담배를 끊지 못하고 본인 편할 대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의술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이상 임신 하기 어려운 케이스인데 P의 남편은 입으로는 아이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하면서 정반대의 행동을 해서 P는 임신하는 것을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남편보다 남의 편으로 느껴질 때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거나 억측을 부리면 상처도 곧잘 받지만 대부분 이혼하지 않고 살아간다. 

같이 살아온 정 때문이기도 하고, 자식 때문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두려워서이기도 하고, 부모님께 잘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이기도 하고, 바람 안피고 도박 안하면 참고 살만하니까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 같다.


나도 결혼생활 6년 동안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 위기를 수차례 넘겼다. 

한때 정말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서 이혼 서류를 준비했었으나 남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말도 안되는 어거지로 나를 힘들게 하지만 6년 동안 살면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지금은 어느 정도 살만한 것 같다. 


결혼 2년차 이내인 친구들이 나에게 남편 문제로 상담을 요청해올 때 주로 해주는 말이 있으니,

"남편을 그냥 큰 아들이라고 생각해. 네 맘대로 안된다고 무조건 윽박 지르지 말고 아이 달래듯이 살살 달래가면서 칭찬해줘봐. 그럼 조금 나아지니까... 그렇게 사는게 그나마 덜 싸우는 지름길이야."
"그리고 반드시 경제적으로 독립하려고 노력하고... 남편이 왜 남편인지 알아? 남의 편이기 때문에 남편이야."




일방적으로 아내 입장에서 글을 써서 정말 선량하고 아내를 진심으로 위하는 남편들이 이 글을 보고 반기를 들 수 있겠지만 남편 때문에 힘든 일상을 겪는 분들이 내 글을 보고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는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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