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의 역할과 책임
우리 아이들은 생후 5개월이 되었을 때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돌도 안된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보낼 때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당시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어린이 집에 아이들 육아를 맡기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도 나의 어려운 마음을 헤아리셨는지 우리 아이들은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애착도 잘 형성이 되었고 어린이 집에서 하는 놀이 활동을 아주 즐거워하는 편이다. 키즈 노트에 업로드 된 사진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웃고 있는 모습이 한 가득이라서 지금도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가끔은 섭섭할 정도로 어린이 집 선생님을 좋아해서 하원하러 데리러 가면 아이가 집에 가기 싫다고 선생님께 안기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만큼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을 의미 하기 때문에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더욱 생기곤 한다.
아이들이 어린이 집을 다니고 나서 크게 달라진 것 중의 하나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엔 sarasa씨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주원 어머니 혹은 주아 어머니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어린이 집에 다니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소아과에 가게 되면 어머니라는 호칭을 듣긴 했지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냥 지나쳤는데 어린이 집 선생님과 소통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어머니라는 호칭을 자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는데 자주 듣다 보니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서 어린이 집 선생님과 상의할 일이 있으면 주원주아 어머니인데요 라고 스스럼 없이 말 할 정도로 친근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학부모로서의 책임과 역할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일 선생님이 쓰신 알림장을 체크하면서 기저귀나 물티슈를 때에 맞춰서 보내야 하고 1년에 두 번 정도 있는 학부모 상담과 교육에도 참여해야 한다. 뭐 이런 정도는 학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어린이 집에서 보낸 가정 통신문의 내용을 보고 적잖이 놀라게 되었다.
내용인 즉슨, 매월 둘 째주 수요일은 학부모가 어린이 집에 참석해서 급식 도우미로 활동하거나 아이들과 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학부모의 참여를 유도하는 내용이었다.
순간적으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도 아닌 어린이 집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다니, 나 같은 워킹맘한테 벌써 부터 이런 걸로 스트레스를 주다니, 하는 약간의 분노?가 생겼지만 내용을 차분하게 다시 읽으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자니 회사에 연차를 내야 하는 부담감이 생기고 안 가자니 다른 부모님들은 전부 참여하는데 나만 빠져서 어린이 집 활동에 관심 없어 하는 학부모로 비춰질까봐 걱정 되서 결정을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참여하라고 이야기 했는데 남편도 나랑 비슷한 입장이라 쉽게 승락하지 못하고 내가 대신 참여해줬으면 하는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전부 후회 할 것 같아서 우선 이번 달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매월 정기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니 하반기에 참석해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어떤 활동들이 기습적으로 찾아와서 학부모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강요 받을 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유연하게 잘 대처하기를 소망한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애 키우면서 일하는 게 정말 어렵고 수많은 고비들을 넘길 때 마다 불만이 가득하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강한 비판 의식을 갖고 있지만 누구나 다 아는 문제를 여기서 논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