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 별명은 ‘대꼿’이었다.
아니면 아니고, 맞으면 맞는 사람.
후회를 길게 하지 않았고, 늦은 밤 이불속에서 이미 끝난 선택을 다시 꺼내 들지도 않았다.
지금 말로 하면 MBTI의 T, 감정보다 판단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도 그랬다.
비평준화 지역에 살던 나는 선택지가 많았다. 여러 학교의 교육과정을 살펴보고, 주변의 권유와 상담도 충분히 들었다. 그리고 결정은 단호했다. 한 번 정한 선택은 번복하지 않았다. 피해 가지도 않았다.
선택한 이상 목표는 하나였다. 합격.
나는 계획을 세웠고, 하루의 분량을 정해 찍어 누르듯 해냈다. 감정이 개입할 틈 없이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수행했다. 그 방식이 나에게는 자연스러웠다.
대학교의 전공은 경영학과이다.
열아홉 살에 수능을 보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성향인지, 어떤 직업이 나에게 맞을지 정확히 아는 게 가능할까. 그 당시 가장 점수가 높고, 가장 무난하고, 가장 ‘괜찮아 보이는’ 선택이 경영학과였다.
하지만 수업을 들을수록 질문이 생겼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답을 찾기 위해 생각만 하지는 않았다. 나의 관심은 무엇인지 대학에 와서야 진지하기 고민했고 언어와 관련한 공부를 하고 싶어 국어교육학과 수업을 신청해 들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수업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감각을. 말과 언어를 다루는 공부 앞에서 나는 이상할 만큼 집중했고 자연스러웠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국어교육학과 수업을 적극적으로 수강했고, 4학년 때 복수전공에 합격했다. 한 학기를 더 다닌 뒤 경영학과와 국어교육학과, 상업과 국어 교직 이수를 모두 마쳤다. 대학 졸업까지 걸린 시간은 4년 6개월. 돌아보면 그 과정은 고단했지만, 그때의 나는 확신이 있었다.
못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삶은 내가 만드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언어를 다루는 직업, 국어교사가 되었다.
이성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의 일정과 내가 해야 할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교제 중인 사람이 있어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시간을 문제 삼지 않았다. 서로의 삶에서 성장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서운함보다 응원과 격려가 먼저였다.
국어교육학과를 복수 전공하면서 학교 안에 친구를 만들 기회도 많지 않았다. 학교는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하는 공간이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다니는 곳은 아니었다. 마음을 깊이 터놓는 친구가 없어도 크게 아쉽지 않았다.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도 비슷했다.
본교 출신이 아닌 학생은 나 혼자였고, 일을 병행하고 있어 주간 수업에 참여하기도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는 적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대학원에 간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공부를 하러 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굳이 잘 보일 필요도 없었고, 시간을 들여 마음을 맞추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때의 나는, 사람에게 기대지 않아도 내 삶의 균형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헌데 지금의 나는, 그 균형을 잃어버렸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