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이성적인 여자가 무너질 때

2장. 사랑이라고 믿었고, 충분히 안정적이었다.

by 소소한 기록자

사랑이란 감정은 내게 늘 평온함이었다.

요동치지 않는 마음, 불안하지 않은 관계, 조용히 이어지는 일상.

나는 그렇게 들끓는 감정을 소비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일도, 그 강렬함을 견뎌내며 나를 증명하고자 애쓰려 하지 않았다. 그 전에 나는 생각했고, 그런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내게 스쳐 간 여러 만남 속에서 나는 오히려 평안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조용해지는 사랑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물아홉 살.

그때 내게 사랑이 찾아왔다.

불안하지 않은 사랑이 처음으로 주는 안도감이었다. 그는 결코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매우 바쁜 사람이었지만, 그는 매일 나를 만나러 왔다.

정말 매일,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10분을 보더라도 그는 그 먼 길을 달려왔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충만한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늘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곁을 내주는 사람. 감정의 기복이 적은 사람 옆에서 나는 평온했다.

그는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들과는 결이 달랐다.

고요한 사람이었다.

잠잠한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기준이 단단했고, 주변의 공기가 어떻게 바뀌어도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삶이 크게 흔들리지 않겠다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 믿음은 계산의 결과라기보다, 몸이 먼저 느낀 안정감에 가까웠다.


그 역시 내게 끌림을 느꼈다고 했다.

나의 밝음과 당찬 태도가 좋았고, 내가 이성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에게 이끌렸다.

나는 그의 안정감에, 그는 나의 밝음에.

우리는 서로에게 빠르게 가까워졌고, 사회가 요구하는 시기와 가족의 바람 속에서 결혼이라는 선택에 도달했다.


연애 기간은 길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를 나름대로 탐구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사람을 온전히 알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많은 질문을 잠시 덮어두게 했고, 이성은 자연스럽게 무뎌졌다.


부모님은 내게 서른이 되기 전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확신하셨을까 싶다. 고리타분한 분들도 아니었고, 하나뿐인 딸을 일부러 고단한 삶으로 밀어 넣으려 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 말들은 내게 꽤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결혼은 분명 행복한 일이라는 전제가 너무도 당연하게 주어졌고, 나는 그 전제에 순응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선택했다.

이 사람이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스물아홉.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은 나.

그리고 결혼.

독립인 듯,

그러나 아직은 독립이 아니었던 시작.


결혼 준비 과정은 놀라울 만큼 평안했고, 매끄러웠다.

남편의 꼼꼼함과 정확함, 그 완벽함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 과정만 보아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신랑을만났다고 느꼈다.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사람,

어려움이 생기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고 조용히 제거해 줄 줄 아는 사람.

불안해지기 쉬운 결혼 준비 기간을 오히려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해 준 사람.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사람이 내 남편이 된다는 사실이 기쁘고 든든했다.


그때의 나는,

이 편안함이 무엇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 질문은, 13년 뒤에서야 나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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