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엄마를 위해서라도 더 행복해져야겠다.
친정엄마가 1주일 동안 집에 와 계셨다.
엄마는 나와 자차로 편도 5시간 거리에 살고 계시지만
첫째 하나만 있을 때는 출장 같은 이슈가 있을 때는 종종 오셔서 며칠 동안 아이를 봐주시곤 했다.
아이가 둘이 되고 나서는,
그리고 엄마가 무릎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앉고 일어서는 게 불편해지시고 나서는
더 이상 엄마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다행히 코로나 덕분(?)에 올해는 출장 한 번 간 적 없고,
나 또한 일을 많이 맡지 않으려고 노력한 덕분인지 올해는 엄마를 소환할 일이 그다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말부부이지만 돌봄 이모님도 오시기 때문에 죽을동말동 사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친정엄마랑 옆 동에 살면서 애 하나 키우는데도 전적으로 도와주시는 엄마들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도는 순간도 많았지만
굳이 부모님과 떨어져 타 지역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결정한 것도 나였고
여기서 임용을 치고 계속 살겠다고 결심한 것도 나였으니 할 말이 없다.
나에게 친정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니다.
내 걱정 없이 엄마 아빠가 건강하고 즐겁게 노후 생활을 하시길 바랄 뿐이다.
좋은 날 가족을 이끌고 가끔 방문하는 곳이다.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마음은 늘 울고 싶다.
오은영 박사님이 말씀하신 생각과 감정은 다르다는 게 이런 거겠지.
나와 4살 터울 언니와 6살 터울 남동생을 키우신 엄마는 거의 한 평생 육아를 하셨고, 우리가 꽤 자란 후에도 아이돌보미 일을 하셨다.
전형적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아빠와 살면서도 우리 앞에서는 큰소리 한번 내지 않으셨고 항상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없는 형편에 삼 남매를 키우느라 억척같이 살아오신 엄마와 결과주의적 사고를 가지신 아빠에게 나는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자 어지간히도 노력했다.
어쩌면 그게 나를 여기까지 발전시킨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들 둘 육아에 주말부부에 워킹맘으로 살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잘 해내며 내 직업에서도 한자리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과외 한번 없이 상위권을 유지하고,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임용에 합격하고, 대학원마저 조기졸업했을 때 그랬듯이
항상 엄마 아빠에게 자랑스러운 딸이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 모습이
뭐랄까
나에게 조차 낯설다고 할까.
그런데도 엄마를 이번에 오시라고 한 이유는
저녁마다 오시는 이모님이 하루 휴가를 쓰겠다고 하신 것도 있지만
발달이 조금 느린 둘째, 엄마 말고는 아무에게도 가지 않으려는 둘째가 버거워서
할머니가 오시면 좀 나을까 싶어서 부탁을 드린 거였다.
하지만 둘째는 할머니가 오신 이후에도 절대적인 나의 껌딱지였고
엄마는 그런 모습을 안타까워하실 뿐이었다.
사방팔방을 휘젓고 다니는 둘째를 쫓아다닐 다리 상태도 아니셨다.
나는 엄마를 소환한 걸 후회했다.
엄마한테 기대지 않기로 결심했잖아.
희생의 아이콘인 우리 엄마는,
팔도 다리도 불편하시지만 우리 집에 와있는 동안
부지런히 음식을 하셨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정리해주셨다.
마치 우렁각시처럼 퇴근하고 오면 집은 깨끗해져 있었고,
매일 대충 때우던 끼니도 건강식으로 든든히 잘 먹었다.
엄마를 광명역으로 모셔다 드리는 길에 엄마는
내게 좋은 얘기를 해주시려고 했지만
나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모진 말로 되받아쳤고
돌아오는 길에 그것밖에 안 되는 나에게 화가 나서 눈물을 흘렸다.
엄마를 모셔다 드리는 사이에 첫째는 태권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머리를 다쳐서 구급차로 응급실에 갔고
남편이 오늘 서울에 있어서 내가 광명역에서 오는 사이에 병원에 가 있을 수 있었다.
출혈은 많았지만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서 찢어진 부분만 두 방 찍고 왔다 했다.
집에 와서 보니 첫째는 씩씩하게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얘기했다.
잠깐 아팠지만 괜찮았다고 했다.
그리고 여전히 과도하게 까불거리는 첫째의 모습을 보며 정말로 괜찮구나 싶었다.
별 거 있나 싶었다.
우리는 하루를 그냥 무탈하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좀 피곤하고 좀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도
좀 울적하고 못난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혹은 내 주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루를 어찌어찌 큰 사고 없이 마무리했다는 것으로도 기뻐할 일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사건과 생각과 감정으로 피곤한 하루였지만,
첫째가 저만하니 다행이다
엄마를 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빠와 집에 같이 잘 들어가셨다고 하니 다행이다.
나도 오랜만에 나의 가족과 저녁을 먹고 다 같이 피곤했던 하루를 뒤로한 채 곤히 잠들었으니 다행이다.
엄마 1주일 동안 고생 많았어.
다음에 만날 땐 더 좋은 모습으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