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초에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참 어릴 때부터 지독스럽게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왔다.
계획대로 안될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걸려서라도 되게 하고야 말겠다는 아집이 있었다.
학교 성적이 그랬고, 임용이 그랬고, 대학원이 그랬고, 또 각종 자격증이 그랬다.
안되면 다시 도전해본다. 그리고 이루고야 만다.
그게 나의 철칙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참 피곤하게 산다고 했지만,
그게 나에겐 에너지원이었다. “이루고야 만다.”라는 결심.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아이는 낳아놓으면 척척 클 줄 알았는데, 어릴 때부터 발달 이슈가 많았던 첫째,
그리고 둘째 계획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5살 터울이 되었고
둘째는 또 순해서 발로 키운다더니 둘째도 발달이 느려서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찌 보면,
내 삶은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다.
때로는 그래서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육아는 나와 맞지 않아. 나를 괴롭게 하는 일이야.
다음 생에는 아이는 당연히 낳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을 거라고 몇 번을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다음 생이라는 기회가 온다면.
예비 초등학생인 첫째에게 큰 욕심은 없지만,
워킹맘인 나를 위해 하교가 좀 늦은, 그리고 좀 더 세심한 케어를 받게 하기 위해 사립초를 지원했다.
떨어질 거라고 생각은 안 해봤다. 어떻게든 될 거다. 계획은 그랬다.
그래서 그 이후까지 생각했다.
두 군데를 지원했는데 A학교가 되면 어쩌고저쩌고 B학교가 되면 어쩌고저쩌고
꽤나 디테일한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은 말도 안 되게 거의 끝자락의 예비번호를 받았고,
사립초 입학은 애매하게 물 건너간 것도 아니고 완전히 물 건너갔다.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학교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마냥 막막하고 화가 났다. 시험에 불합격했을 땐 더 공부해서 붙어야겠다고 노력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이건 그냥 랜덤으로 끝이었다.
사립초에 지원했던 주변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연락을 해보았고, 다들 떨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나만큼 화가 나있는 사람은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화난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서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이유는,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였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대부분이 공립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공립초등학교가 나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우리 아파트는 초품아이고(물론 이사 예정이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16층 형아가 다니고 있고(아이는 심지어 16층 형아랑 다니겠다고 사립초에 떨어지고 싶다고 했다.)
또 동네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고, 학원도 여유롭게 다닐 수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짜이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데도 마냥 화가 난 것은 그야말로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였다.
그동안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사립초 합격 이후의 모습, 나의 삶, 커리어, 이사 계획 등등
모든 것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던 것을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고민했던 그 시간이 아까워서였을 것이다.
갑자기 고열이 나서 시어머니와 집에 있었던 둘째를 데리러 조기 퇴근을 하고 집에 와보니
둘째는 나를 보고 좋아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보니 첫째가 써놓은 쪽지가 보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 밤 책상에 앉아서 뭐하나 했더니 이걸 써놨구나.
이제 지독스러운 고집을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다.
아니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
계획한 바 대로 이루고야 말겠다는 아집이 20대까지의 나를 성장시켰다면
계획대로 되지 않을 아들들을 보며 모험적인 삶의 즐거움을 찾는 게 30대의 과제가 아닐까.
아이는 예상대로 사립초에 떨어진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좋아했다.
나도 어느새 아쉽긴 하지만, 불합격의 씁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난주, 첫째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쳐서 구급차에 실려갔고
그리고 어제 갑자기 둘째가 고열이 나서 대구에 계신 시어머니가 새벽같이 ktx를 타고 올라오셨다.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unplanned 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이 커가면서 더더욱 의외의 상황을 맞닿들이게 될 것이고,
나는 그 순간순간에 당황하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엄마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주말 계획을 짜고 있다.
주말 계획은, 적어도 주말 계획은 계획한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