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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Feb 09. 2024

텐트럼(tantrum)에 대처하는 자세

에어팟을 딱 끼고

텐트럼이라는 단어는 아마 자폐나 ADHD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라면 많이 들어보았을 단어이지만(혹은 매일 경험하고 있는 단어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단어이다. 텐트럼(tantrum)을 다음사전에 검색해 보면 '역정', '울화' 등으로 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의미가 더 강력하다. 대개는 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데굴데굴 구르며 소리를 빽빽 지르고 생떼를 부리는 정도는 되어야 텐트럼이라는 용어를 쓰기 때문에 텐트럼을 '분노발작'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발달장애가 있을수록 욕구불만에 대한 대처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거나 언어로 본인의 마음을 설명하는 것이 능력 밖의 일이기에 텐트럼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요즘 우리 둘째처럼.


꼭 첫째가 학원을 마치고 한 시간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올 6시 즈음에 둘째의 텐트럼은 시작된다. 그냥 뭐든 수가 틀리면 울어재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온 첫째는 문을 열자마자 숨넘어가게 우는 둘째를 발견한다. '엄마 맑음이는 또 왜 저러는 거예요?'가 '다녀왔습니다'를 대신할 정도.


어제는 기찻길 장난감을 만들다가 매트 밖으로 레일이 튀어나갔다고 울기 시작했고 나는 달래고 달래다가 달래 지지 않으니 나중엔 멍해져 버렸다가 그 후엔 같이 소리를 빽빽 질렀다. 첫째는 '엄마! 맑음이 우는 거 그냥 무시해. 놔두면 괜찮아져!' 하는데 이걸 어떻게 무시하냐고. 이렇게 시끄러운데 너는 그게 어떻게 되냐.


오늘은 자기가 쓰던 집게가 없어졌다고 울어재끼기 시작했다. 비슷한 걸 갖다 줘도 이거 아니라고 울고 난리다. 첫째가 또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한숨을 크게 쉬며 '또 시작이군'이라고 했다. 맑음이를 달래도 줘보고 비슷한 집게를 5개나 갖다 줘봤지만 달래 지지 않자 나는 서서히 분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노에 못 이겨 소리를 빽빽 지를 것만 같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바로 도망가는 거다. 나는 뛰어서 도망가는 대신 조심히 에어팟을 꺼내 들었다. 첫째야 미안. 엄마는 음악 속으로 도피한다. 너는 너의 살길을 스스로 찾길 바라. 


나는 유튜브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Taylor Swift의 'Look what you make me do'를 최대 크기로 틀었다. 쿵작거리는 음악 사이로 둘째의 울음소리가 음소거가 되었고 아이의 서러운 표정만이 내 눈앞에 남았다. 스파게티를 만들어달라는 첫째의 요청에 충실하게 요리를 했다. 양파를 찹찹 썰면서 둘째의 서러운 얼굴을 외면했다. 스파게티가 거의 다 만들어졌고 노래는 3번 이상 재생 되었을 무렵 녀석의 울음은 조금 잦아들었다.


에어팟을 빼고 둘째를 꼭 안아주었다. '집게는 나중에 아빠 오면 다시 찾아보자. 이제 식사시간' 하며 둘째를 자리에 앉혔다. 둘째는 조금 진정이 되어서, 본인 의사를 밝혔다. 자기는 스파게티를 안 먹겠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내 식탁 의자를 끌고 가서 찬장에서 식판을 꺼내고, 내려와 밥솥을 열고 밥을 펐다. 아무튼 너의 자조능력은 정말 끝내준다.


우리는 그렇게 평화롭게 저녁시간을 되찾았다. 치료사들도 때론 텐트럼에 대처할 때는 '계획된 무시'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나는 오늘 '계획한 무시'는 아니었지만, 살고자 '즉흥적으로 계획해서 무시'를 했고 나름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 네가 울지 않고 얘기하면 잘 들어줄게. 앞으로도 우리 말로 하자. 예쁜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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