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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Mar 28. 2024

내가 학교에서 만났던 특수교육대상자 아이들

아무 생각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한 존재로.

고등학교 영어교사 3년 차에 고3담임을 맡았던 나의 반에는 특수교육 대상자가 2명이 있었다. 결혼하기도 전의 일이었는데, 나는 우리 반에 특수교육대상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그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동안 특수반에 가있고, 우리 반에 올라와도 '어차피' 수업을 이해 못 하니 수업에 참여시키기도 힘드니,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한 존재로 여기며, 문제만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아이들의 대학 진학에 고3담임의 역할은 너무나 컸다. 입시 상담은 기본, 교사 추천서도 써야 했고, 아이들이 괴발개발 쓴 자기소개서도 고쳐줘야 했다. 게다가 우리 반은 초과밀학급이었다. 40명 가까이 되는 고3 남자아이들이 한 교실에 있었으니, 우리 교실은 언제나 전쟁통 같았다. 

그런 우리 반에 특수교육대상자가 2명이 있었던 거다. 하지만 역시 '어차피' 그 아이들은 대학에 갈 것도 아니라 '어차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미미하니, 정말로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7월 즈음에 아이들의 입시 상담으로 거의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던 무렵, 우리 반 특수교육대상자 아이 중 한 명이 건강의 문제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아이가 수술을 받고 2주 정도 학교를 못 나온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녀석을 병문안하고 싶었지만, 교통이 열악한 지역의 학교에 있었던 지라 마음만 병문안이었다. 어머님께 '제가 병문안을 너무 가고 싶은데 차가 없어서요.'라고 했더니, 어머님이 대뜸 나를 데리러 학교에 오시겠다고 하신다. 어머님은 내가 언제 시간이 되시냐고, 맞춰서 학교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신다. 나는 야자감독을 하루 빼고, 우리 반 나머지 아이들의 응원 메시지가 담긴 롤링 페이퍼를 만들어서 손에 쥐고, 어머님의 차를 타고 우리 반 특수교육대상자 아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머님이 왜 나를 그렇게 적극적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6인실 병실에 입원해 있었던 녀석은, 내가 병실에 등장하자마자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난리가 났다. 다른 환자들에게 '우리 담임 선생님이에요!!'라고 하며 마구마구 자랑을 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 너는 나를 이렇게 소중하게 여겼구나. 선생님이 너무 부족했었다. 미안해. 


녀석이 학교로 돌아온 후에도 여러 이벤트가 있었다. 우리 반의 가장 멋쟁이 아이의 통을 줄인 바지를 훔쳐 입었다가 들켜서 손들고 벌서기도 하고(그땐 요 정도의 체벌이 가능했다.), 한 번은 누가 우리 교실이 있던 층의 세면대에 대변을 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범인을 잡겠다 하시며 난리가 났었는데, 범인은 우리 반 고 녀석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3년 동안 함께 성장해 온 그 특수교육대상자 아이의 여러 실수와 만행들을 묵묵히 지켜보며 앞으론 그러지 말라고 한 마디 씩 해주었다. 


나머지 한 명의 특수교육대상자 녀석은 그토록 나를 스토킹 했다. 녀석은 단기 기억이 없다고 했다. 혼이 나도, 돌아서면 또 따라다니고 몰래 훔쳐보고 계속 문자하고 전화하고 하는 일을 반복했다. 졸업 후에도 몇년간 계속 되었다. 미혼의 20대였던 나는 그 녀석을 혼을 내면서도 조금 무서워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순진한 고 녀석 역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지금 녀석들은, 30살이 넘었을 텐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이 둘을 터울 있게 출산하면서 나는 비담임의 '영광'을 몇 년 동안 안았다. 담임은 아니었지만, 수업 중에 특수교육 대상자 아이들을 매일 만났다. 식탐이 병적으로 있는 녀석,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녀석, 말이 너무 많은 녀석, 말이 아예 없는 녀석 등... 주로 나는 고3 수업을 담당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통합학급'에 와 있음에도 '통합'해서 수업을 한 적이 없었다. '시스템 상 어쩔 수 없다'라는 핑계로. 


그리고 올해, 5살을 맞이한 내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가 되면서, 첫 개별화 회의 때 내가 요청한 것이 '통합학급에서 아이를 분리시키지 말아 달라' 였으니, 나의 지난 교직생활에서 만났던 특수교육대상자 아이들에게 참 많은 죄책감을 느꼈다. 복직을 해서 학교에 돌아가면, 나는 어떻게든 그 녀석들을 일반 수업에 통합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 아이가 일반 학교에서 그렇게 되길 바라는 진심의 마음을 가득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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