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불안함 속에서 허우적대며...
둘째가 느리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돌 무렵. 그리고 내가 2년간의 휴직을 끝내고 학교로 복직한 것도 아이의 돌 무렵이었다. 휴직을 너무 오래 하는 것도 싫었고, 육아시간이라는 제도 덕에 두 시간 일찍 퇴근도 할 수 있어서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3시 반쯤에 하원시킬 수 있는 일정이었어서 복직을 안 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1층에 위치한 학생안전부에서 근무를 했는데, 소위 학생부다. 그리고 1층에는 특수반 교실도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특수반 아이들을 대체로 다 알고 있었고, 특수교사와도 친해지면서, 특수반 아이들이 개별적으로 얼마나 능력치가 다양하고 성격도 다양한지를 들었다. 어떤 아이는 특수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반 아이들에 섞여 멀쩡하게 학교를 다니는 반면, 대화가 불가능한 아이도 있었다. 완전 통합을 하는 친구 중에 자기가 특수교육대상자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서 비밀로 해달라는 녀석도 있었다. 특수반 친구들은 점심시간에 가장 먼저 특수선생님과 함께 급식실로 이동해서 밥을 먹었는데, 나도 4교시에는 수업이 없는 날이 많아서 특수반 친구들이 밥 먹는 것을 자주 보았다. 밥 먹으면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것이,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나에겐 그 모습조차도 부러웠다. 우리 둘째는, 고등학생 정도가 되었을 때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일반학교 특수반이라도 올 수 있을까?
발달지연에 관해 깊게 파면서 알게 된 사실들은, 같은 이름의 장애라도(자폐스펙트럼, 지적장애 등) 그 수준은 그야말로 개개인별로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일반 학교의 특수학급에 배치가 되려면 그래도 일반 학급에서 앉아 있을 수 있는 정도의 비교적 경한 수준이어야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에게 발달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전에는 학교에서 마주치는 특수학급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초등 수준의 구몬 수학을 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안타까워했던 마음이 있었는데, 그 정도의 수준이 된다는 것도 참으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 장애 정도가 심해서 특수학교에 가야 하는 경우라도 특수학교 경쟁률이 너무나 치열해서 그것조차도 원하는 대로 학교를 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떤 분이 인스타에 스카이캐슬에 나왔던 코디가 특수학교에 가기 위해 컨설팅을 받는 것을 희화화해서 웹툰으로 그리기도 했다. '벽에 똥칠을 한다고 하십시오!' '말 한마디도 못한다고 하십시오!'라고 하며...)
퇴근 후에는 운전대를 잡고 미친 듯이 끼어들기를 하며 아이를 픽업해 센터 시간에 맞추어 치료실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면 나는 또 눈물이 핑 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까. 끝은 있을까. 우리 학교에 그 녀석들 부모님도 이렇게 아이들을 케어해서 그렇게 까지 끌어올렸겠지? 그런데 그다음은? 아이가 20살이 되면? 다른 아이들은 대학도 가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알바도 하고 그런 삶을 살 텐데, 우리는 아이를 20살 이후 다시 영아기 때처럼 집에 끼고 있어야 하는 걸까? 뭐 그런 불안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잠도 제대로 못 자던 그때.
그 불안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고 우울증 약도 먹고 남편과 엄청나게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로 결론을 내렸다.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 현재 할 수 있는 수준의 치료나 교육을 하는 것. 그러면서 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애쓰는 것.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둘째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올라갈지는 나는 모르지만, 그저 나는 내 선에서, 나에게 주어진 여건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미래의 둘째에 대한 고민은 미래의 나에게 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