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지만
첫째 아이는 사회성 이슈와 더불어 화용언어 사용의 어려움으로 7세 때부터 8세 때까지 짝치료를 받았다. 8세 여름 즈음 발달계의 종결자 세브란스 천근아 교수님께서 '이제 이 아이는 발달 이슈가 없으니 더 이상 나에게 찾아올 필요가 없다'라고 치료 종결을 선언하시기 전까지는 첫째에게 모든 노력을 쏟았었다. 첫째와 함께 짝치료를 했던 상대 아이도 어릴 때부터 발달 이슈로 안 해본 치료가 없고 안 만나본 의사가 없는 아이인데, 그 아이의 엄마는 내게 아이의 과거를 통틀어 장애통합어린이집에 갔던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얘기했다. 그 이유인즉슨, 장애통합어린이집 통합반에 들어갔더니, '이 아이에겐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아이를 바라보니, 애초에 기대치부터 낮게 설정이 되어 있었고, 아이가 문제행동을 하면 강압적으로 제지한다는 것이었다. 자유분방한 아이를 숲유치원에 보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도움을 더 받아보겠다고 장애통합어린이집에 보냈다가 더 양육이 어려워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교육청 직장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던 만 1세 우리 둘째는, 만 2세가 되면 장애통합어린이집으로 옮길 생각으로 열심히 알아보고 있던 찰나였는데 그 얘기를 듣고 많이 흔들렸다. 생각해 보니 그런 듯했다. 나는 교실에서도 아이들을 아무 편견 없이 가르쳤고,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녀석은 '조금 기초학력이 부족한 녀석인가 보다'하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던 녀석이 특수교육대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아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부분이구나 하고 손을 놓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만 3세가 되면, 숲유치원에 보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다.
만 2세 1년 동안 우리 둘째는, 한 반에 인원이 적은 일반 어린이집에 5시간 정도 다니면서,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를 비롯한 이런저런 발달 관련 치료를 최대 주 9회를 받았다. 다행히 아이도 잘 적응했고, 중간에 권태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36개월까지 사실상 무발화였던 아이가 문장으로 발화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니 굉장한 발전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또래 아이들은 이미 작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둘째가 주 9회의 치료로 1에서 3으로 성장했다면, 정상 발달을 하는 또래들은 3에서 10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 2세에 1년 동안 발달지연아동과 관련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지내면서, 딱히 공격성 없고 순한 성격의 둘째는 그야말로 방치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이렇게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친절한 전문가가 상주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통합환경에서 개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었다. 내가 언제까지 그 역할을 해 줄 수 없을뿐더러 통합환경을 내가 구성하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부족하니 말이다. 나는 '특수교육대상자라는 프레임을 아이에게 씌우지 마라'라는 첫째의 짝치료 친구 엄마의 말을 '그럴 수도 있겠다'정도로 접어두기도 하고 특수교육대상자 접수가 언제인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우리 동네에서 가장 환경이 훌륭한 공립단설 유치원에 올해 유난히 특수교육대상자를 많이 뽑았고, 분당 서울대에서 임상연구에 참여하면서 받았던 볼품없는 ADOS 점수 덕분에 특수교육대상자에 아주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수교육대상자로 유치원에 입학한 지 한 달 반.
나는 특수교육대상자로 아이를 유치원에 입학시킨 것을 내가 둘째를 키우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은 특수교육대상자 아이들 3명과 일반아동 9명으로 구성된 통합학급이고, 통합학급교사와 특수교사, 그리고 방과 후 특수교사와 특수교육실무사까지, 아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주시는 어른들이 여러 명 계시고, 그 속에서 아이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아이는 유치원을 너무나 좋아하고 있고 유치원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공짜다!
물론 프레임의 문제도 있다. 나도 이미 그 프레임을 아이에게 씌우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이건 잘 못할 거야, 이건 어려울 거야. 그런 프레임이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그 프레임을 벗는 것에는 나의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할 뿐, 아이는 그러든가 말든가 자신의 속도로 크고 있다.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어른들과, 통합학급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유치원 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가 기특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