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가보기는 해야 하니까요.
보라카이 면적이 10.32 km²라고 하니, 참 작기도 한 섬이다. 인구도 1만 3000명이라고 하니, 몇 년 살면 한 번쯤은 이 동네 사람들 다 스쳐 지나가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작은 섬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어학원과 화이트비치에서 1주일 정도 지나고 나니 저 북쪽 끝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섬의 북쪽 끝에는 푸카셸 비치라는 멋진 비치도 있고, 절벽이 멋진 드니위드 해변도 있고, 투어 아니면 가기 힘든 루호산 전망대, 맹그로브 파크, 키홀 등등. 2주나 이 작은 섬에 있는데, 안 가기엔 후회막급일 것 같아서 부랴부랴 투어를 예약했다. 우리의 4시간짜리 초특급 스피드 투어. 작은 섬이라 다행이다. 우리는 초등학생 3명이 어학원 오전 수업에 들어간 4시간 동안, 그 다양한 코스의 투어를 다 해냈다. 그것도 우리 둘째를 데리고.
아이들의 어학원 수료식이 있던 날이었다. 우리가 투어를 가야만 한다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게. 수료식은 12시 50분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냉큼 마지막 수업에 보내버리고 8시 30분에 투어 차량이 우리 어학원 앞으로 오길 기다렸다가 냉큼 탑승했다. 가자. 우리가 이 섬을 떠나기 전에 후다닥 둘러보자!
하필이면 바람이 무지하게 부는 날이었다. 우리는 6개의 코스를 4시간 만에 클리어했다. 처음 간 곳은 맹그로브 파크. 맹그로브가 있었다고? 보라카이에? 말레이시아 정글에서 봤던 그런 규모의 맹그로브는 아니었지만 뿌리가 드러나 보이는 숲이 맹그로브가 맞다.
포토존이 딱 하나 있는데, 필리핀 사람들은 사진에 진심인 것인지 어찌나 사진을 눈치도 안 보고 요리조리 많이 찍으시던지 그냥 포토존에서 사진 찍는 것은 포기하고 나왔다.
차로 루호산 전망대로 이동해서 계단을 타고 열심히 올라가 보니 보라카이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라카이에서 산에 올라갈 거라곤 예상도 못했는데, 역시 투어가 좋긴 좋구나. 삐걱거리는 녹슨 계단을 오르는 둘째 모습이 부쩍 성장한 것처럼 보였다. 짠 바람을 맞으며 안아달라고 난리 치다가도, 엄마 팔이 아프다고 얘기했더니 알아듣고 계단을 한 발짝 한 발짝 오르는 녀석, 보라카이에서 많이 컸다.
우리는 또 매서운 바람을 뚫고 일릭 일리간 비치 끝에 위치한 거대한 바위 구멍 키홀에도 다녀오고, 심각할 할 정도로 한산했던 일릭 일리간 비치에서도 실컷 바람을 맞으며 걸어보고, 이효리가 광고를 찍었다던 푸카셸비치에도 갔다.
크록스를 거꾸로 신은 채 모래가 지글지글하는 비치 근처를 잘도 걷던 우리 둘째. 푸카비치의 모래는 화이트비치의 모래와 사뭇 다르게 입자가 큰 모래였다. 예쁘게 만들어진 모래성도 보고 조형물에서 기념사진도 수십 장 찍고, 기념품도 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샀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였던 이유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 아이들의 수료식이 40분 남았다! 우리의 투어 일정은 몇 군데를 더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가이드에게 우리는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한다며! 부디 과속을 해주길 부탁하며! 수료식에 늦지 않게 어학원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우리의 벼락치기 투어는 막을 내렸다.
이미 찍고 온 관광지 개수로는 하루가 끝난 것 같은데 아직도 12시 40분이라고? 어쨌든, 지루한 오전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들의 수료식에서 그간 고생한 녀석들을 축하해 주고 격려해 줄 수 있었다. 아, 저녁엔 우리 초등학생들까지 다 모시고 선셋 세일링 가기로 했었지? 갈 날이 얼마 안 남으니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투어에서 만난 가이드의 얼굴도, 선셋 세일링에서 함께 배에 탔던 선원들도, 하나하나 사진에 담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의 후반부의 사진이 훨씬 많은가 보다. 우리의 모든 순간이 소중했거늘, 꼭 끝날 때 쯤 그걸 더 크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