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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pr 19. 2024

으리으리한 호텔이 하룻밤에 7만 원!

역대급 모기 소굴이었으나 

어학원에서 같이 지내던 한국인 한 분이, 주말에는 호텔에 갈 거라는 얘기를 하셨다. 어학원 숙소도 다 돈 내고 온 건데 굳이 여기를 비우고 호텔을 또?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근처에 워터파크가 있는 파라다이스 가든이라는 4성급 호텔의 주말 요금이 7만 원 대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6명이 쓰기엔 좁은 어학원 숙소에서 청소 때문에 언니와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찰나였는데, 잘됐다 싶었다. 후딱 아고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서너 명은 더 초대해도 될 것 같은 널찍한 디럭스룸이 7만 원! 금-일까지 2박 3일로 예약해 버렸다.

수업을 듣고 오는 초등학생 녀석들은 수업을 마친 후에 오기로 했고, 나는 둘째와 함께 먼저 호텔로 갔다. 예전부터 호텔에 가는 걸 좋아했던 둘째는(취향부터 등골 브레이커!) 호텔 입구에서부터 신이 났다. 작은 워터파크 같은 수영장을 보더니 당장이라도 물에 뛰어들 기세로 흥분했다. 룸 키를 받고 호텔로 가보니, 와! 입이 떡 벌어진다. 남편이랑 다 함께 4인에서 호텔에 갈 때도 이렇게 넓은 방은 안 갔었잖아! 홀로 한국에서 추운 겨울을 나고 있을 남편에게 잠시나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그 호텔방 문을 열었을 때였다. 


둘째가 래시가드로 갈아입고 방에서 뛰쳐나와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놀기 시작하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둘째는 '깊은 물, 얕은 물' 개념을 여기서 배웠다. 자기는 깊은 물에는 무서워서 안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 이렇게 몸으로 배우면 금방 배우는구나. 또 코 끝이 한번 찡 해지고. 5시 즈음이 되자 수업 듣고 와서 억울한 듯한 우리 초등학생 녀석들이 워터파크를 보자마자 신이 났다. 그 와중에 한 녀석은 또 살짝 열이 있어서 뛰어들지도 못함에 시무룩 그 자체다. 어학원에서만 삼시 세끼를 해결하던 우리는 드디어 보라카이의 맛집을 찾아서 헤매기도 했다. 아이들 취향 저격에는 실패했으나, 적어도 언니와 내 입맛엔 딱... 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히 건강한 한 끼를 했다. 


하지만 이 호텔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애지 간한 동남아 휴양지는 다 다녀봤지만 이토록 모기가 많은 곳은 처음 봤다. 하룻밤 사이에 10마리를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우리 9살 첫째도 손으로 한 마리를 잡았으니 멍청한 모기들이 바글바글한 호텔이었음에 틀림없다. 프런트에 연락해서 모기가 너무 많아서 잘 수가 없다고 했더니 방을 바꿔주겠다고 했다. 옮길 방을 한번 보고 옮기라고 해서 따라가 보니 더 좁고 위치도 안 좋은 방이라 포기했다. 대신 직원에게 모기 잡는 약이라도 달라고 해서 보일 때마다 조금씩 뿌리긴 했으나, 아이들과 잘 방이라 많이 뿌리지도 못했다. 결국 우리는 그날 밤 모기를 잡다가 잠들었고 잠자면서도 모기에게 열렬히 뜯겼다.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쳐서 아침에 너무나 피곤했지만, 호텔에서는 언니네와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을 즈음에 시기 적절히 분리되어 아이들은 서로의 방을 오가며 놀기도 하고, 같이 조식을 먹으러 갔다가 조식당 앞에 펼쳐진 화이트비치 모래사장에서 아침부터 모래놀이를 실컷 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이곳에 온전히 휴가를 보내러 온 것 같은 주말을 보냈다. 모래사장에서 예상치 못하게 아이들의 옷이 여러 번 젖어서 e트라이크로 5분 거리의 어학원에 몇 번을 왔다 갔다 하긴 했지만 가까운 거리여서 그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이 작은 섬에서, 복작복작 움직이면서도 나는 이 순간들을 계속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온도, 바람, 바다냄새가 느껴지는 듯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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