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화가 나 있었던 이유
우리가 묵었던 어학원 내의 숙소는 신발을 따로 벗어두는 곳이 없었다. 수업만 듣고 왔다 갔다 하는 거였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우리 4명의 아이들은 수영장에 하루에 한 번 이상 들락날락거렸고, 수영장 주변은 잔디밭이었어서 수영장에 한번 갔다 왔다 하면 방 입구는 물 줄줄+잔디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화이트비치에 한 번이라도 다녀오면 모래까지 범벅이 되어서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형국의 바닥이 된다. 바닥만 그러면 다행인데, 어린이들은 또 들어오자마자 피곤하다며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그러면 침대도 물+잔디+모래의 콜라보가 되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더러움에 대한 역치가 비교적 높은 편이기도 하고(우리 집도 그리 깨끗하지 않다.), 어차피 보름만 있다 갈 건데 뭐 더러운 게 대수인가 싶기도 하고, 일주일에 1번 룸 클리닝을 해주니까 그때까지 어찌어찌 버텨보자 라는 안일한 마음도 있었는데 언니는 달랐다. 언니는 나보다 지저분함을 못 견뎌했다. 아이들이 신발을 신고 입구 라인을 넘어가거나, 발을 제대로 안 닦은 채로 방으로 들어가거나, 정신줄 놓고 침대에 올라가기라도 하면 언니는 어디서 발이 100개 달린 지네라도 나온 것처럼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우리는 아이들을 밖에서 씻겨서 올려 보내고, 방을 열심히 닦았다. 침대 시트의 모래를 털기도 하고, 수건을 몇 개 희생하여(어학원에서 수건 제공이 안돼서 우리가 집에 있는 수건을 20개 정도 가져왔었다) 바닥을 틈틈이 닦았고 그 수건을 빨고 또 널어놓고... 또 실수로 그걸로 얼굴을 닦고(!) 하면서 그렇게 2주를 버텼다.
언니도 내가 더러움에 대해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었을 것이다. 같이 치워 마땅한데 '나는 이 정도의 더러움은 괜찮은데?' 하고 있었으니, 혼자 정리하고 치운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말에 잠깐 호텔로 이동했을 때 그렇게 평화로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방의 입구가 호텔 수영장을 이용하고 온 두 아들 녀석들로 인해 순식간에 물과 잔디 범벅이 되었어도 나는 마음이 평화로웠던 반면 언니의 방에도 왈가닥 두 초등학생 녀석들이 수영장을 들락날락했어도 아주 깔끔했다.
다음번에 우리가 또 캠프를 같이 오게 된다면, 방은 꼭 따로 하자는 언니의 말. 나는 둘째가 낮잠 자는 시간에 아이들이 들락거려서 불편했던지라 그러자고 했지만, 언니는 나의 지저분함에 대한 높은 역치에서 온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언니야, 나는 보름동안 6명 함께 방 써서 좀 좋았어! 다음번에도 다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방을 따로 쓰게 될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