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카페 모래놀이는 가짜야.
초딩 셋이서 각자의 레벨에 맞게 어학원 수업에 들어가면 깍두기 둘째와 화이트비치에 간다. 때론 언니와 함께 가기도 하고 때론 나와 둘째만 E트라이크를 타고 나가기도 했다.
감각처리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아 시각추구가 아직도 뚜렷하게 있는 우리 둘째에게 모래놀이와 어씽(earthing-맨발 걷기)은 최고의 자연놀이이다. 그걸 알기에, 보라카이에 오면 매일 모래놀이를 시켜줘야겠다 했는데 이렇게 소원성취를 한 것이다. 화이트비치 모래는 정말 고와서 래시가드를 입고 놀면 모래가 래시가드 표면에 구석구석에 끼여 있을 정도인데, 그걸 손으로 만지면 얼마나 부드럽고 느낌이 좋은지.
둘째는 화이트비치로 통하는 디몰 상점에서 조악한 모래놀이 세트를 하나 집어 들었다. 다이소에서 5천 원이면 괜찮은 퀄리티의 모래놀이 세트를 살 수 있는데, 여기 물건은 3천원 해도 살 것 같지 않은 조악한 얇은 플라스틱 재질의 모래놀이를 5천 원이 넘는 가격에 팔고 있었다. 한국보다 더 비싸다며 깎아 달라고 흥정해도 판매하는 아저씨는 보라카이는 물건이 들어오는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깎아줄 수 없다며 완강한 자세로 나왔다. 그냥 안 사고 말지 하고 싶었지만(원래 내 구매성향이라면 절대 안 샀을 거다!) 둘째가 꼭 그걸 사겠다고 거기서 울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10일 정도 쓸 물건으로 너무 퀄리티 따지지 말자며 그냥 사들고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모래놀이 세트를 첫 개시 한 모래놀이에서 삽이 똑 부러지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째는 모래놀이 바구니를 신줏단지 무시듯이 소중히 들고 다니며 모래놀이를 즐겼다. 뭐, 그러면 됐지. 보라카이에서 모래놀이 세트 퀄리티를 따지고 있는 내가 오히려 속물같이 느껴졌다.
매일 이어지는 모래놀이에, 크록스에 모래가 계속 들어가서 불편하니, 일단 비치에 도착하면 크록스를 벗고 시작하는 습관도 생겼다. 바다에 들어갔다 오면 물이랑 모래가 뒤섞여 어쨌든 엉망이 된 발로 또다시 크록스를 신고 꾸역꾸역 E트라이크를 타는 곳까지 돌아와야 했지만(안아달라고 난리를 치며...), 아이가 나중의 일까지 생각하며 지레 걱정하고 모래놀이를 하는 건 아니니 그런 난리조차 지극히 아이다워서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거대한 삽도 모래놀이 세트를 구매할 때오 비슷한 레퍼토리로 구매해서 들고 다녔는데, 초딩들과 야간 모래놀이를 나왔을 때 어찌나 형아들이 삽을 노리던지 기싸움이 벌어졌다. 역시 모래놀이는 템빨인가.
출국하는 날 아침, 보라카이 어학원에 새롭게 들어온 6살 아이에게 그간 소중히 모셨던 모래놀이 세트와 거대 삽을 쿨하게 물려주고(?) 짐을 쌌다. 6살 아이 엄마도 '모래놀이 세트가 어이없게 비싸서 안 샀는데 고맙다'라고 한걸 보니 퀄리티 대비 가격에 대한 불만이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아 어이없게도 안심했다.
한파 속의 한국에 돌아와 몇 주째 보라카이 앓이를 하던 둘째에게 모래놀이 키즈카페에 가자고 했더니 '키즈카페 모래는 가짜야!'라고 한다. 아직 언어가 서투른 우리 둘째가 그렇게 고급스럽고 심오한 얘기를 하다니 너무 놀라우면서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맞아, 바다에서 하는 모래놀이가 진짜지? 그런데 오늘은 너무 추우니까 키즈카페 모래놀이 가자' 라며 어찌어찌 설득을 해서 갔더니 또 잘 논다. 하지만 부모랑 분리되어 아이 혼자 들어간 인위적인 공간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를 유리 너머로 바라보면서 나도, 그 고운 화이트비치의 모래의 감촉이 아른거려서 눈물이 슬쩍 났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