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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Sep 29. 2024

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또 긴 여정을 떠날 때가 온 것일까.

올해 초3인 우리 아들의 발달력을 설명하자면, 

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눈맞춤에서부터 다름이 느껴졌다. 

어린이집 교사를 하던 조리원 동기가, 8개월이 된 우리 아이에게 '세상이는 눈을 잘 안맞추네요?'라는 말에서부터 밤을 잊은 검색은 시작됐다. 자폐. 그 말이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불안에 떨며 대학병원을 예약했다.

두돌에 처음 뵈었던 천근아교수님과의 초진에서부터 공포는 증폭되었다. 언어지연, 사회성 지연, 놀이수준이 떨어짐. 그런 무서운 말들로, 두돌의 뽀실뽀실 귀여운 나의 아들은 내 인생의 걱정덩어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사이에 더 큰 어려움이 있는 둘째를 낳은 것은 별개의 이야기이고, 암튼 우리 첫째는 기특하게도 천근아 선생님께 '종결'을 받지 않았는가!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둘째가 우리집의 더 기가 막힌 슈퍼루키로 등장했을 즈음, 첫째는 종결을 받았다. 미심쩍은 면은 분명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ADHD 정도는 남아있을 수 있으니, 그런건 로컬 병원에 가서 상담하라. 하지만 순수 ADHD는 약이 도움이 되겠지만 자폐 성향이 있는 ADHD는 약물로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굉장히 찜찜한 그 말과 함께 종결을 날리셨다. 



그래서 로컬에 가지 않았겠는가. 분명 ADHD가 있어 보이니까. 사회성에 어려움이 보이니까. 친구들과 잘 못어울리니까. 돌 지난 둘째를 돌보미선생님께 맡기고 한시간 거리의 센터까지 가서 7세부터 초1때까지 사회성 치료도 받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차도가 없으니, 초 2때부터는 메디키넷 5mg으로 약도 시작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1년을 약을 먹다가 초3때 약을 끊게 된 것은, 아이가 안 먹어도 너무 안먹어서였다. 점심 급식은 거의 다 갖다버리다시피 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내게 자기는 키가 작아서 고민이라는 얘기를 했다. 약은 25mg까지 증량을 했는데, 여전히 산만해 보이는 아이를 보며 종종 현타가 오던 시기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또래 아이들이 대체로 다 산만하다는 것을 내 눈으로 여러번 확인하며, 이 약이 과연 아이의 성장을 저해하면서까지 먹일 가치가 있는 약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근아 교수님의 찜찜했던 종결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떠울랐다)


그러다가 약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stolen focus(우리나라에서는 '도둑맞은 집중력'으로 번역되어 나온 책)"을 읽고 나서였다. 한 작가의 "썰"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ADHD란 없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었다. ADHD 진단율은 높아지고 있고, 아이들은 점점 산만해져가고 있지만, 그게 정말 아이에게 "Disorder"가 있어서가 아니라, 환경적인 문제가 너무나 크고, 특히 아이가 먹는 음식이라든가 아이가 주어진 환경에서 그 문제를 찾아볼 수 있다는 그 내용이, 한참 ADHD 약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던 당시의 나에게 너무나 설득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항정신성 약물을 내가 갑자기 "삘"이 왔다고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전문가의 컨펌이 필요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정신과를 찾아가서 아이의 발달력을 애가 이러이러 하고, 소아정신과계의 대부이신 천 교수님께서 우리 아이는 자폐성향이 있었던 ADHD라 약이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제가 보기엔 딱 그 케이스인거 같아서 약이 소용이 없는 것 같은데 끊어도 될까요 라고 했다. 내가 너무나 답정너 같은 자세였어서 그런지, 의사는 그러라고 했다. 그 대신 그 시기 즈음 불안이 올라온 아이를 위해 '아빌리파이' 소량을 처방해주셨다. 그리고 그 약도 두달 정도 복용한 후 단약을 했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묘한 과정을 통해 항정신성 약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많은 애미는, 뇌에 좋다는 여러 영양제를 검색해서 몇십만원치 주문해놓고 아이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항정신성약물을 대체할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털끝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엘 테아닌이니 오메가3니 마그네슘이니 등등 ADHD에 좋다는 영양제는 다 쟁이며 아이에게 꾸역꾸역 먹였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훈육이 먹히지 않는다며.

매일 혼나고 있다며.

학급 아이들에게 천덕꾸러기 이미지가 되었다고.



그리고 나는,

또 다시 우리가 ADHD와의 전쟁을 향한 긴 여정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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