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생길지도 모를 친구를 위해
나의 오랜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친구와 둘이 카페와 다녀오는 호사도 누렸다.
돌아와서 우리 둘째를 재우는데, 둘째가 그런다
"엄마 친구 집에 갔어?"
"응, 엄마 친구랑 신나게 놀다가 집에 갔지. 맑음이 친구는 누구야?"
"나는 친구가 없어. 형아 친구가 내 친구야."
이렇게 말하면서 짓는 씁쓸한 표정은 무엇인가.
귀를 의심했다.
이렇게 까지 친구관계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ADOS 점수 기준으로 봐서는 '안정적인' 자폐군에 들어가는 우리 둘째,
네가 '친구가 없다'라는 말을 그렇게 쓸쓸한 표정으로 할 줄은 몰랐다. 그런 개념이 네 머릿속에 있을 거란 생각조차 못했다.
요즘 꽤나 논리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둘째에 대한 나의 고민은,
1. 실비치료 때문에 미루고 있는 장애진단을, 이렇게 말을 잘하는데 받을 수 있을까?
2. 같은 반 특수교육대상자 친구들 보다는 여러모로 수준이 높지만 일반 또래와는 어울리지 못하는 그 미묘한 간극 속에서 이 아이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1번에 대한 고민은 세브란스 천근아 교수님께서 7세까지 일단 기다려보자고 해서 '좋아! 자폐계 탑티어 천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기다려 보지 뭐!' 했지만, 그런 안일한 자세로 기다렸다가 애매하게 발달이 올라와 결국 완전통합반으로 가서도 묘하게 겉돌며 계속 외톨이 신세로 지내면서 어떠한 법적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 두렵다. 조금이라도 발달이 덜 올라왔을 때 눈물을 머금고 장애등록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2번에 대한 고민은, 맑음이 스스로가 같은 반 특수교육대상자 친구들은 '아기'라고 표현하며 같이 놀지 않겠다고 하는데(이것도 좀 어이없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표현하는 것 조차도 내 눈에는 기특하다), 나는 그 아이들 부모랑은 친해서 자주 연락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어울리기에도 부담이 없다는 점. 반면 일반 친구들은 연락처를 모를 뿐 아니라, 가끔 유치원 근처 놀이터에서 만나면 내가 자격지심이 있는 건지 일반 아이들 부모가 나를 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맑음이가 그 아이들에게 뜬금없는 소리를 해대는 걸 보면 그 아이들 부모가 괜스레 피할만도 하다고 나조차도 생각하고 있으니, 뭐 해결이 안 된다.
오늘 우리 학교 특수선생님과 티타임을 하며, 맑음이 같은 케이스의 아이가, 인지도 애매하게 올라와서 자신이 특수교육대상자라는 사실을 나중에는 지독히 숨기고 싶어 하지만 일반 아이들 틈에도 못 끼는 그레이존의 아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이 작은 아이가 한평생 감당할 그 외로움이 마치 내 외로움인 양 마음이 서늘해졌다.
오늘도 어제도 치료실에서 언어치료(요즘은 재활이라고 표현한다)를 받고 있는 너는, 이 수업을 통해 조금이라도 언어 발달에 도움을 받아 조금이라도 너를 이해하는 친구를 만나 조금이라도 덜 외로워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엄마는 최선을 다 할 테지만 미처 채워주지 못한 너의 외로움을 너의 언어로 나 아닌 누군가와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