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동동거릴 필요는 없다.
학교로 복직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유치원에서 3-4시쯤 치료스케줄에 맞춰 하원하던 맑음이는,
나의 복직과 함께 일정을 내 퇴근시간에 맞춰 5시에 하원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 변화가 맑음이에게 그렇게 힘이 들었나 보다.
첫 한 두 주는 어찌어찌 버티는 것 같더니, 한 3주 차 되니 "엄마 4시에 와"를 시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4주차가 되니 "엄마 2시에 와"로 급진적인 시간을 언급하면서 똥꼬집을 부린다.
너도 갑자기 5시까지 유치원에 남겨지는 게 힘들겠지.
그렇지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맑음이를 5시까지 유치원에 맡긴 것은 아니다.
맑음이는 지난 1학기 동안 유치원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유치원 친구들과 상호작용을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유치원 친구들도 좋아했다.
친구들의 정보를 캐내 것도 맑음이의 즐거움이었다.(누구는 몇호차를 탄다, 할머니가 데리러 온다 등등)
그렇기에 유치원에 한두 시간 더 있는 게 이 아이에게 크게 힘들지 않겠노라는 판단하에 유치원에 5시까지 있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또 그 와중에 유치원에서 엄마처럼 믿고 따르던 특수선생님께서 병가를 쓰셨다!
그것도 한 달 이상이나!
당연히 쓰실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또 아이에겐 엄청 충격이었나보다.
그 와중에 좋아하던 친구도 이사를 가면서 유치원을 떠났다.
그러면서 맑음이의 유치원 일상이 무너졌다.
유치원이 불편한 곳이 되었고,
어제는 급기야 등원버스 앞에서 안 타겠다고 시위를 벌이셨다.
하필이면 시위를 벌이신 날에 샤 스커트를 입은 나.
하마터면 치마가 벗겨질 뻔했다.
어찌나 치맛자락을 잡고 울던지...
버스 등하원도우미 선생님들께서 난감해하시며 다음 코스로 가야 하기 때문에 나보고 잘 달래서 알아서 등원시켜야 할 것 같다고 하셨을 때 나는 진짜로 눈물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10분 후에 우리 반에 조례를 들어가야 하고, 20분 후엔 1교시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를 번쩍 들어서 차에 짐짝처럼 싣다시피 하고 나는 눈물을 훔치며 출근을 했다.
그렇게 눈물 바람에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며,
내가 괜히 복직했나,
나는 아직 복직할 팔자가 아닌데,
나는 아직도 애 치료센터를 더 열심히 달려야 하는 장애아 엄마인데,
내 욕심에 복직했나.
내가 이렇게 여기서 남의 자식들을 가르치고 있을 만한 사람인가.
내 자식이 저 모냥인데.
뭐 그런 생각들로 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다 문득,
최근 맑음이의 유치원 특수반 친구엄마와 함께 봤던 '그녀에게'에서의 대사가 생각났다.
너는 니 인생도 살아
나는 교직이 내 인생의 일부인데,
그것도 내가 참 좋아하는 내 인생의 일부인데,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
맑음이도,
이런 저런 변화들에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네가 아무리 자폐라 한들, 변화 없이 살 순 없지 않은가.
환경의 변화에 적당히 적응하면서 살 줄 알아야지, 언제까지 변화를 힘들어한다고 아이의 환경에 변화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살 수 없진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내 인생을 살 것이다.
그것도 아주 치열하고 열심히 살 것이다.
그리고 맑음이도 내 인생의 일부이기에, 맑음이와의 내 인생도 소중히 여기며, 나의 인생과 맑음이와의 인생의 묘한 균형점을 찾아가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맑음아 너도,
그런 변화 속에서 적응하며 너도 니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해.
잘해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