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너는 도대체 뭘까?
최근에 유명한 유튜버 소아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압구정에 개원을 하셨다. 나는 57개월에 접어들고 있는 우리 둘째를 청년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진료해 주실 '젊고 유능한' 소아정신과 선생님도 곁에 두고 자문을 얻고 싶었기 때문에, 비록 이미 소아정신과계의 탑티어 교수님들을 다 뵙고 왔을지언정 또 병원 문을 두드렸다.
묘한 긴장감이 드는 대학병원과 달리 개인병원은 역시 편안한 분위기였다. 설문지를 한참 작성하고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서는 아이와 놀아 보라고 하셨고, 나는 둘째와 병원에 준비되어 있는 장난감으로 신나게 놀았다. 녀석은 수판을 이리저리 흔들고 자동차 바퀴를 굴리기도 했지만, 내가 말을 하면 대답해주기도 하고 놀이에 슬쩍슬쩍 참여하기도 했다. 갑자기 "15! 나는 15가 좋아!"라고 하길래, 이리저리 흔들고 있던 수판으로 함께 15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기를 15분쯤 지났을까,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개입하셨다. 둘째에게 생일파티 놀이하자고 하니 둘째는 "내 생일은 2월이야!"라고 하면서 뽀로로 케이크에 촛불을 꽂더니 "이건 가짜라서 안 뜨거워!"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참을 보시더니, 의사 선생님은 우리 둘째는 자폐라고 보기에는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하셨다. 띠용.
ADOS 점수에서는 아주 안정적인 자폐군이었다고, 그것도 작년에 첫 번째 ADOS는 으마으마하게 높은 점수였고, 추적검사로 했던 올해의 ADOS에서도 빼박 자폐군이라고 나왔다고 했더니, 현재 나이대에서 ADOS만 검사를 했을 때는 사회성이 낮으면 그렇게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하셨고, 원래 자폐라 함은 만 4-5세 때 자폐적 특성이 최고조에 이르는데 현재 모습에서는 뚜렷한 자폐적 요소(상동행동과 같은)가 없기 때문에, 또래보다 사회성이 낮고, 언어가 낮고, 인지가 낮은 것으로 보아서는 전반적 발달지연, 혹은 경계선 지능이나 지적 장애에 가깝지 자폐라고 진단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사실 지난 6월 천근아 교수님께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시긴 했다. 자폐 고위험군 정도로는 볼 수 있겠으나 현재로서는 자폐라고 진단 내리기는 어렵고, 언어치료를 통해 인지를 최대한 끌어올리라고 하셨던 것.
치료 방향을 여쭈어 봤더니, 치료 역시 현재 하고 있는 일반적인 치료(언어치료, 놀이치료, 작업인지치료) 정도를 계속 이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 아이, 드디어 자폐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걸까.
웩슬러검사(지능검사)를 예약하고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보다 다행일 순 없지 않은가 싶은 생각에 더해, 장애 진단이 내려지지 않는 경계선 지능이라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험난한 '법적인 장치 없이 일반 세상 속의 경계인'의 삶이 또 그려졌기 때문이다.
첫째도 천근아 교수님께 만 2세쯤 자폐 진단을 받았다가 일반 아이로 그냥 키우라는 말을 초등학교 1학년때 들었는데, 우리 둘째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내 육아 목표는 왜 항상 일반 아이로 키우는 것이 되어야만 할까.
항상 노심초사하며 첫째를 키웠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의사의 진단명에 매몰되어 아이를 걱정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다시 한번 결심해 본다.
네 진단명이 무엇이든, 너에게 어떤 라벨이 붙여지든, 너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 사회가 너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든 너를 온전히 너라는 이유로 사랑하도록 노력해야지.
오늘도 한 발짝 더 나아간 것 같아 뭉클하다. 앞으로도 힘내보자.
항상 나를, 그리고 너를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