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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Oct 17. 2024

아들 둘 동시에 사고 치는 날

그 정도 일에 의기소침해질 내가 아니다!

아침에 갑작스레 코피가 난 날. 

복직은 두 달을 맞이했고, 바야흐로 복직 후 두 번째 월급을 받았다.

쉽지 않은 두 아들을 육아 독립군으로 키우면서 워킹맘 생활을 하는 것이 조금씩 힘에 부칠 때쯤 카드값이 나갈 거라는 문자로 협박이 들어오고 그리고 그걸 해결해 주는 월급이 연이어 온다.  

아! 해결했어! 이번달 치료비도 생활비도. 


유난히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을 하고 둘째 맑음이의 유치원 하원 픽업을 갔다. 

그런데 하원하는 자리에서 방과 후 선생님께서 그러신다. 방과 후 시간에 여기저기 다른 교실을 돌아다니며 ㅇㅇ이를 따라 한다면서 소리를 지르고 다녀서 통제가 힘들었다고 한다. 같은 특교자 친구 중에 언어가 많이 느린 친구가 하나 있는데, 요즘 그 친구가 내는 소리를 그렇게 따라 한다. 집에서도 종종 그래서 알고 있긴 했지만, 원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피로도가 쌓이면서 각성이 올라와 더더욱 그러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하원을 한 후, 집 바로 앞 미술학원에 갔다. 쌀놀이를 한다고 미리 공지를 받고 갔다. 아직 1:1 수업을 하고 있는지라, 잠깐 외출을 다녀오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맑음이가 규칙에 대한 교육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고. 미술활동을 했던 교실 내부를 보니, 쌀을 사방에 집어던져놨다. 발달이 좀 느린 아이라는 정도로만 소개를 드렸는데, 그래도 나름 규칙을 잘 지키는 편인데 이렇게 까지 난동을 피워놓을지는 몰랐다.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집에서 교육을 잘 시키고 오겠다고 또 머리를 조아리며 씁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첫째 세상이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상이가 자기들과 놀이터에서 잡기 놀이를 하는데 규칙도 안 지키고 밀치고 욕도 했다는 것이다. 집에 들러 짐만 내려놓고 다시 둘째를 데리고 놀이터로 출동. 아 이런. 첫째의 편을 들어주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고(명백한 세상이의 잘못이었다는 뜻), 아이들은 논리적으로 세상이의 잘못을 따박따박 얘기해 주었고, 그 와중에 첫째는 씩씩거리며 감정에 복받쳐 울고 있었다. 이미 정신이 너덜너덜해져서 "야 나라도 너랑 안 놀고 싶겠다!!"라는 말이 목구녕을 통과해서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찰나까지 왔을 때 정신을 번쩍 차리고 아이들을 적당히 사과시킨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와중에 또 외국인인 내 친구가 한국에 들어왔다가 오늘 출국하는 날인데, 내가 또 같이 저녁을 먹고 공항까지 태워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요 외국인 친구가 보낸 '나 너희 집 근처인데 지금 너희 집에 가겠다'는 문자를 받는 순간,  휴... 여기저기 일을 벌여 놓은 나 자신이 몹시 싫어졌다. 그냥 아몰랑 혼자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누워있고 싶다. 


하지만 어쩌랴. 빨리 해결할 건 해결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일단 외국인 친구에게는 날씨도 좋으니 우리 집 근처 한 바퀴 크게 돌고 오라고 얘기해 놓고, 고 사이에 첫째를 집에 앉혀놓고 '네가 어떻게 했다면 더 좋았을까?'라는 주제로 한동안 대화를 나눈 후, 상황을 정리했다. 

유치원과 미술학원에서 난동을 피운 둘째는 꼭 안아주었다. 너는 엄마의 직장복귀가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지.  하지만 엄마는 학교에서 행복하단다. 너도 이 생활에 적응해 주길 바라.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토닥토닥. 


그리고 이 외국인 친구!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육아 바통을 넘겨주고 외국인 친구와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의 인천국제공항. 그렇게 밤운전을 하며 오가다 보니, 나도 어느 순간 감정을 회복했다.

   

잠들기 전 첫째와 항상 대화를 나누는데, 첫째가 내일은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 잘 풀어보겠다고 한다. 나는 사실 오늘의 사건을 보면서 '첫째는 빨리 약을 다시 시작하고, 둘째도 조만간에 병원에 가서 약을 좀 받아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꼭 약이 능사는 아니고(그래도 꼭 약은 다시 받을 거다!) 아이들의 사건사고에 오히려 내가 일희일비하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바르게 알려주는 단단한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일상이 피곤하고 이런 일이 다른 형식으로 연속되더라도, 그때마다 휘청거리지 않도록 더 중심이 잘 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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