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은 부모교육 강연에서
출장 이후 밀린 업무 및 집안일을 하다가 거울을 보는데 새치가 어마어마하다. 토요일엔 염색을 하러 가야겠다. 그런데 토요일 일정을 보니 두어 달 전에 신청해 놓은 느린 학습자 부모교육 강연이 있다. 새치는 일단 접어두고, 부모교육 강연장에 간다.
특수교사 이보람 선생님의 강연이었다. 선생님께서 입양한 여자 아이가 알고 보니 느린학습자였다고 한다. 요지는 느린학습자를 양육하는 양육자의 태도에 대한 강연이었다. 그런데, 느린 학습자에 대한 강연인데 어쩌자고 이렇게 재밌지? 깔깔깔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른다. 그건 아마도, 느린 학습자와 함께 살아가면서 겪었던 어려움에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끊임없이 연구하셨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에 대해 제대로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웃을 수 있는 이야기로 승화시키신 것 아닐까.
거의 매일 세상 심각한 표정에, '너만 없으면 내 인생은 꽃길이었어' 마인드가 기본 장착되어 있었던 나는 첫 번째로 내 삶의 태도를 반성했다. 나도 똑같은 교사인데, 수능특강 영어만 들여다보고 행정업무하기 바빴다. 사실은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학습자에 대한 사회 정서 공부, 다양한 니즈가 있는 학습자에 대한 공부가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 같은데 말이다. 자기 결정성 이론의 3요소로,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에 대한 얘기도 주요하게 다루어졌는데, 아이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공감하고, 또 아이들이 자율성과 유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대화법. 그런 것들이 교사에게, 그리고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혹은 세상 모든 부모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
그런데 내 마음에 비수를 꽂은 것은 '관계성'이라는 단어에서였다. 그 부분은 항상 내 눈물버튼이었다. 아이가 눈치 챙기는 법이나 화용 언어가 잘 안 되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서 교우 관계에서 당연히 상처를 받게 될 텐데, 그럴 때 아이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비빌 언덕, 즉 돈독한 관계의 사람을 많이 만들어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부모님과 350km 거리에 살면서 분기별로 한번 만나며, 시부모님도 비슷한 상황이고, 남편은 다정함이라곤 1도 없는 극 T에 심지어 집에서 얼굴 보는 시간은 하루에 1시간 정도밖에 안된다. 게다가 다혈질 성격의 아빠를 아이들은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내가 우리 두 아이들의 유일한 든든한 기둥,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퇴근 후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 책 읽어 달라는 아이에게 기꺼이 수명을 당겨와 쓰며 책을 읽어주고, 둘째를 재운 뒤 영어 숙제를 하고 있는 첫째 앞에 앉아서 책이라도 읽고 있는 척을 하면서 학습에 어려움은 없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은 없었는지 넌지시 물으며 버티고 앉아있는 것이다. 내가 유일한 비빌 언덕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 보면, 둘째가 좋아하는 태권도 큰 사범님이나 유치원 선생님, 2년 동안 계속 봐 왔던 언어치료사 선생님이 100%까지는 아니지만 가끔은 심리적으로 비빌 언덕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첫째도 마찬가지다. 초2 때 다니던 영어학원 선생님께 인사하겠다며 아직도 시간을 쪼개서 찾아가는 것 보면 거기가 비빌 언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손을 내민다기보다는 손가락 하나정도 내밀지도 모르는 비빌 언덕을 공고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태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될 때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아이에게 예의를 갖추도록 교육시키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둘째는 '김해까지 몇 시간 걸려요?'라는 말을 자주 내뱉곤 했다. 항상 자기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김해에 있는 이모네 가족이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가까이 살면 좋겠다고 했다. 자주 보고 싶다고 했다. 그건 첫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한들 김해로 이사를 갈 순 없으니, 자주 전화하고, 만났을 때 좋은 시간 보내고, 그렇게 물리적 공간은 멀리 있더라도 심리적 연결성이 돈독하다면, 그 또한 너의 심리적 비빌 언덕이 되겠지.
그러니 연결성에 대해 또 너무 고민 말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비가 오는 월요일이다.
출근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