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며칠째 잠을 자다가도 벌떡 깼다.
불안하면 종종 그런다.
이번 불안은, 아이들에 대한 불안과 더해서 내 인생에 대한 불안이었다.
맑음이는 6살의 몸을 가지고 자신을 중학생이라고 믿는다. 아직 양말도 스스로 못 신으면서. 유치원 친구들에게 '이 친구들은 내 친구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스스로 쉴드를 친다. 사회성이 0에 가깝다 못해 마이너스로 가고 있다. 지난 주말 자조모임 친구와 쿠킹클래스에 갔는데 어찌나 필사적으로 그 친구를 피하던지. 그 노력이 가상하다 할 정도였다.
세상이는 어젯밤 갑자기 영어 숙제를 하다가 눈물을 터트렸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친구들이 자기 말만 무시한다는 거다. 월수목금에는 점심식사 후 바로 하교이지만 화요일엔 6교시까지 있어서 점심시간을 보낸 후 마지막 교시를 마치고 오는데, 화요일 점심시간에는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고 했다. 친구가 없나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학교 마치고 학원 마치고 오면 친구들이랑 한 시간씩 놀다 오기도 하고, 주말에 파자마파티도 종종 하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러 명이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낄낄 빠빠를 잘 못하는 듯하다.
우리 집 아이들이야 항상 그런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내 30대 이후 생활을 불행하게 만들었든 성장하게 만들었든
어쨌든 나의 불안은,
이제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하지? 내가 어디까지 더 해줘야 하지? 를 넘어서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지? 자꾸만 이렇게 아이들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나는 그냥 이렇게 살다 죽는 건가.
나도 진짜 꿈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나도 이제 40살인데! 그동안 뭘 이루었냐고 도대체.
뭐 그런 고민으로 종착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 살고자 했던 삶을 살았던 것은 대부분은 20대였고,
30대 때는 ADHD 첫째와 자폐 둘째를 낳고 비협조적인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래 그런 삶을 10년 살았다 이거야,
그래서 이제 첫해의 4/4분기에 접어든 나의 40대를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해야 할까.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자체에서 불안이 온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인가를 이루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첫째가 찍은 한 장의 사진에서,
불평불만 가득한 얼굴의 내 모습을 보고
이제는 삶이 얼굴에 묻어나는 시기가 왔는데,
순간 아찔해졌다.
앗, 나는 불평불만한 얼굴을 가진 투덜이 할머니가 될지도 몰라.
따뜻한 햇살에도 감사할 줄 아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던 예전 결심과 무색하게
언제나 나의 삶과 남의 삶을 비교하며
내 인생은 어찌 이리 꼬였냐며
내 인생은 도대체 왜 이 모양이냐며 투덜거리는
그런 할머니가 되면 안 되겠지.
그러니 내 삶의 목표는,
우리 ADHD 첫째와 자폐 둘째와 비협조적인 듯 하지만 태생이 다정하지 못한 남편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리가 나올지도 모르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다.
아, 베베 꼬인 말투로 하는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그 속에서도 감사한 일들은 항상 있기 때문에
그걸 부단히 찾아내는 그런 삶을 살겠다는 의미이다.
어쨌든 나는 아들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어쨌든 나는 나의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니,
그 속에서 열심히 찾을지어다. 감사한 일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