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 버리기

벌써 40살이라고...

by 메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운 없다고 생각했던 자기연민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기연민이 얼마나 우스운 건지도 깨달았다.


어제 옆반의 키 큰 녀석이 투덜거렸다.

“선생님들이 나를 문제아로 오해해요. 그냥 친구 어깨동무했을 뿐인데 괴롭힌다고 하잖아요.”
그 말을 들으며 갑자기 깨달았다. 그 녀석은 세상이 자신에게 부당하다고 여겼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자업자득이었다. (평소에도 선도위원회에 자주 회부되던 녀석이니까.) 그런데도 내 교무실이 떠나가라 억울하다고 징징대던 185cm짜리 그 녀석을 보니, 이상하게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나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일하며,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두 아들을 홀로 키워내는 일을 ‘불행’이라 여겼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고등학교 시절 공부 안 하던 동기들이 남편 잘 만나 여유롭게 사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또 그 집 아이들이 어찌나 똑똑한지 들을 때마다, 나는 억울했고, 내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자기연민이 얼마나 하찮고 우스운지를.


이번 달에는 대학 강의 요청이 들어왔고, 또 한 기관에서 9박 10일 출제위원으로 함께하자는 제안도 받았다.
강의는 방과 중 시간이라 수락했다. 하지만 출제위원 건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나의 부재 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슬펐다. ‘나의 발전에는 왜 늘 아이들이 걸림돌이 될까.’ 며칠 동안 우울함에 잠을 설치다가 문득 ‘발전’이란 무엇일까. 꼭 출제위원으로 들어가야 성장하는 걸까. 라는 생각에 미쳤다. 게다가 수능특강 집필 이후, AI 시대에 여전히 이런 문제를 푸는 한국 교육 현실을 비판하며 “다시는 출제 안 한다”고 호언장담했던 나 아닌가.

결국 나는 선택을 내려놓았다. 언니가 아이들을 봐주겠다는 말에 다시 해볼까 했다가, 이내 마음이 불편해져 결국 ‘하지 않겠다’고 결론내렸다. 이 일은 그렇게 종결됐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라.
단,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면 예외다.
인간관계나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일에서는 행동보다 신중함이 우선이다.”
— 남인숙, 『마음을 가지런히』 P.34


‘모든 걸 다 해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성장의 증거가 아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결정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 진짜 성장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은 비워두기로 했다. 남들이 보기엔 기회 같지만, 내겐 무리일 수 있는 일들을 과감히 내려놓고, 대신 지금 이 자리에서 충분히 잘하고 있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도, 제일 억울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내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괜찮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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