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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발달 친구를 집에 초대하다

임용시험치 던 날 만큼 가슴 떨렸던 하루.

by 메이

3주 전부터 맑음이가 유치원에서 2년째 같은 반을 하고 있는 쌍둥이 남매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사실 초대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지난번에 느린 친구들 모임에서 만난 엄마들과 그 아이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다른 아이들이 자기 물건 만진다고 극대노 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망설여졌다. 유치원 친구는 내년까지 계속 볼 사이인데 굳이 초대해서 못난 모습 보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참고 참았다.


그러던 와중 요즘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책 '우리 아이 사회성 키우기'에서 '플레이데이트의 중요성'과 '성공적인 플레이데이트를 위한 준비과정'에 대해서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는 일이 있었다. 친구를 초대하는 것은 그냥 초대하는 게 아니라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놀이 계획을 세우고 규칙을 세우는 등 준비과정이 필요하구나. (첫째가 어릴 때는 친구 초대를 무계획으로 해도 알아서 적당히 놀기도 했으니 플레이데이트 사전계획 같은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느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로 세상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책에서도 '사회성은 타고나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기술이다'라고 대문짝 만하게 쓰여 있는 것을.)


일단 쌍둥이 남매 엄마에게 다음 주에 축구 학원이 끝난 후 우리 집에서 놀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하셨다. 쌍둥이 남매 엄마도 나도 워킹맘에 남편이 육아에 별 도움을 안 주고 있는 사람이라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리고 2년간 같은 반을 했으니 우리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공유하는 주제도 많았다. 일단 1단계, 초대하기는 성공.


2단계, 맑음이에게 친구들이 오면 무슨 놀이를 할 건지 물어보았다. 자석블록놀이를 하겠다고 했다. 만약 친구들이 자석블록 놀이가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했더니, 기차블록을 꺼내겠다고 했다. 지난번 난동을 떠올리며, 만약 친구가 네가 만든 걸 실수로 부셔 뜨리면 어떻게 할 거냐고 했더니 다시 만들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놀이계획과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일주일간 유치원 가는 차 안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매번 나눴다. 친구들을 초대하기 전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 복습을 했다.


그리고 대망의 D-day!

눈을 뜨자마자 아침부터 속이 울렁거린다. 맑음이가 친구들이 왔을 때 난동을 피울까 봐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 진짜 임용고시 당일 아침에 1년 동안 미친 듯이 공부했는데 실수하면 어쩌나 하고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과 매우 유사했다. 휴... 전날 밤에 신나게 집을 치웠는데 왜 아이들은 아침에 또 어지르는 거야... 새벽 수영을 다녀와서 집을 보니 치울 게 한 보따리. 아이들은 뭉그적 거리고 있고 속이 터진다. 빛의 속도로 집을 정리하고 둘째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또 학교에서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일을 하다 보니 초대에 대한 압박이 잠시 사라졌다가 퇴근 시간에 또 살아났다. 괜한 짓을 한 걸까.


축구학원을 마치고 쌍둥이 남매가 집으로 왔다! 같이 저녁밥을 먹고, 놀이를 한다. 처음엔 자석블록을 같이 만들고 놀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따로 논다. 오 이 정도면 성공이야!!!! 맑음이가 친구들을 따라다니면서 이거 만지지 마! 이거 내 거야!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대성공이야!!!! 맑음이가 같이 놀이를 하는 순간이 되었을 때는 친구가 쌓아놓은 블록을 굳이 해체하고 자기 방식대로 하려는 모습도 있었지만 '우리 이렇게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지?!!!' 했더니 또 순순히 양보한다. 나중에는 개그욕심을 부려서 친구들에게 웃긴 말로 웃음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는데, 여자아이가 또 그 모습에 까르르 웃어주었다. 그 웃음에 더 신나서 똥얘기 방귀얘기 한 보따리 늘어놓는 맑음이를 보니 요즘 허풍과 장난스러운 말은 이 친구의 긍정적인 피드백에 정적강화가 되었구나 싶었다. 놀이를 하면서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나중에는 남자아이는 조용히 피하며 혼자 놀잇감을 찾으며 노는 지경이 되었지만 그 타이밍 즈음 되었을 때 첫째가 집으로 돌아왔고, 쌍둥이 남매네도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번 플레이데이트가 비교적 무탈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도 이 집 친구들이 너무 순하고, 엄마도 예민하지 않은 탓이다. 맑음이도 2년 동안 본 유치원 친구들이라 그런지 장난을 좀 치긴 했으나 파멸의 난동을 부리진 않았고, 친구들이 갈 때도 '내일 만나자!'라며 인사해 주고 아름답게 종료가 되었다. 더 기쁜 사실은 이 엄마가 다음엔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이게 뭐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휴대폰을 부여잡고 혼자 감상에 빠져있던 사이에 맑음이는 혼자 씻고 양치하고 잘 준비를 마쳤다. 넌 참 자조가 뛰어난 녀석이지. 맑음이를 재우고 나면 보통은 일어나서 첫째와 책도 읽고 얘기도 하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나도 뻗어버렸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대단히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하루였다. 놀이치료 선생님이 사회성을 논할 단계가 아니라 하셨지만, 0.00000001 mm씩 자라날 너의 사회성을 엄마는 포기 않고 응원해! 고생 좀 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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