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치료사와의 대화에서
맑음이가 개별 놀이치료를 시작한 것은 3개월 정도 되었다. 다른 바우처 센터에서 짝치료를 하다가 짝이 그만두게 되었고, 그러면서 개별 놀이치료를 하게 되었는데 겨우 건강보험료 3000원이 초과된다는 이유로 바우처가 잘리는 바람에 또다시 실비센터로 넘어왔다.
놀이치료의 역사로 말하자면 20개월부터 시작이긴 하지만, 일단 이 아이의 발전에 무엇이 한 몫했는지는 지금은 추측이 불가능한 상태. 어떤 점이 발전했냐면 특히 언어다. 이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를 날이 올까 생각하며 눈물을 훔쳤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지금은 내 기준에서 청산유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좀 긴 얘기를 해야 하거나 생각을 하며 말해야 하는 경우에는 버퍼링이 걸린다. 하지만 아이의 대답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어봐주면 결국은 하고자 하는 말을 해낸다.
이제 6세 막바지의 유치원에서는, 단체수업은 무리 없어 보인다. 아이가 혼자 튀는 행동을 하거나, 흐름을 못 따라가거나 하진 않는 것 같다. 공개수업 때 본모습에서도 정확히 이해는 하지 못해도 얼추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집에서도 한글 공부, 셈하기를 매일 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까지는 어떻게 커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내가 굳이 교사가 아니더라도 학교생활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 학교는 수업에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다고 즐겁게 다닐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맑음이의 사회성은 글쎄. 어른과의 짧은 대화에서는 그렇게 티가 나지 않지만 또래관계에서의 점수를 매기자면 0으로 수렴한다. 또래와의 자연스러운 티키타카가 어렵고, 놀이 수준이 낮다. 아이의 얼굴을 잘 보지 않고 본인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떼를 쓰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사회성을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부지런히 짝치료도 해왔고, 지금도 그룹수업, 짝수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짝수업과 그룹수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물음표이긴 하나, 어쨌든 가랑비에 옷 젖듯 지속적으로 또래 상호작용을 인텐시브 하게 연습해야 하지 않나.
다시 놀이치료로 돌아가서,
어제 놀이치료사가 맑음이에게 '지금은 사회성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하시며, 애 상태가 좀 심각한 거 아시냐. 뚜렷한 ADHD가 있고 약물치료도 필요해 보인다. 집중도 못하고 티키타카가 안 되는 상황이 많은데 사회성을 위한 치료를 하는 게 지금 의미가 있냐. 뭐 그런 식으로 지금 내가 진행 중인 치료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셨다. 어느 부분에서는 놀이치료사의 말에 동의를 한다. 이 아이가 또래와 상호작용이 되려면 그전에 쌓아 나가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 산적해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열심히 쌓으면서 사회성을 끌어올리려고 하는데, 일단은 무엇보다도 아이가 또래에 관심이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치료를 통해서 적절한 소통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치원 인근의 미술학원에 아이들이 우르르 가는 것을 보고 본인도 친구들과 함께 '두줄 기차'하고 가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미술학원에 사정사정해서 다니게 해 줬던 것도 그렇고, 유치원 친구 00 이를 초대하고 싶단 말을 3주 내리 해서 다음 주에 초대하기로 한 것도 아이의 사회성이라는 씨앗이 이제 막 발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워킹맘이자 초등 첫째를 케어하는 미친 스케줄 속에서도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그녀의 '지금은 사회성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말에, 아이스버킷챌린지를 한 것 마냥 얼음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내내 저렇게 내 아이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과의 치료를 이어 나가야 하나? 그런 의문으로 내내 씩씩거렸다. 내 아이를 날카롭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게 굳이 실비치료센터의 놀이치료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대체 사회성을 논할 단계는 정확히 언제인가. 마치 수학공부를 하듯, 덧셈 뺄셈 했으니 이제 곱셈, 나눗셈. 뭐 그런 단계가 나눠져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가 통합반에 다니고 있으니, 일상 속에서 또래와 대화할 기회가 너무나 많다. 그리고 특수교사 및 실무사가 계시니 충분히 또래 상호작용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믿을만한 어른들'도 상시 함께하고 있다. 그 속에서 조금씩 또래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자기 효능감이 생겼고, 또 놀이를 하면서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물론 일반아이들처럼 '응 우리 집에 놀러 와~' 해놓고 장난감 꺼내서 알아서 놀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미리 놀이계획을 세우고,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맑음이와의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맑음이는 친구가 오면 자석블록을 가지고 놀겠다고 했고, 자석블록으로 집을 만들다가 부서지면 소리 지르며 우는 것 대신에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할 거라는 나름의 놀이 계획을 얘기해 줬다. 과연 집중력이 짧은 이 녀석이 자석블록으로 몇 분이나 놀까 싶어서 두 번째 놀이도 계획해야 한다. 마치 시험 치러 가는 사람 마음 마냥 친구를 초대하는 일이 긴장된다. 맑음이의 '정상발달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휴, 이렇게 바쁜데,
놀이치료사의 말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채찍질 정도로 듣고, 그런 것에 굳이 감정소모하지 않고 하루하루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