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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원에서 전화 온

밝히지 않아 죄송합니다.

by 메이

맑음이는 방학 전부터 유치원 근처에 있는 미술학원에 가고 싶어 했다.

아직 삼점잡기도 잘 안 되는 애가,

아직 튀어나가지 않게 색칠도 못하는 애가,

아직도 집중력 10초인 애를,

미술학원에 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맑음이는 확고했다. 그 미술학원에 유치원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이 다닌다는 것이었다. 유치원 아이들이 두줄기차를 하고 미술학원 선생님 손에 이끌려 미술학원까지 가는데, 자기도 끼고 싶다는 거다. 그 논리라면 오케이. 네가 친구들'처럼' 어딘가에 가서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오케이. 치료센터는 너무 가기 싫다는 아이가,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조른다면, 너의 능력치를 떠나 반가운 일이다.


그리하여 미술학원 체험수업을 가보았다.

아이쿠,

아이들이 너무 많다.

딱 봐도 좁은 공간에 10명 이상이다.

야,

여기 미술치료실만 한 공간인데, 너랑 선생님만 있으면 좋을법한 공간인데,

6살 아이들이 10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는데,

너 여길 견디겠니. 감당 가능하니. 니 집중력으로.


어쨌든 나는 밖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50분이 지나고, 아이와 선생님이 나왔다.

아이가 좀 장난이 심하지만, 활동을 잘했다고 하셨다. 다만 한동안 작품이 안 나올 수도 있다고 하셨다.

아, 그런 건 아~무 상관없습니다. 즐겁게 다니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등록을 했지 뭐야!

그리고 이건 사실, 내 자랑거리가 되었다.

특수교육대상자 내 아이가 일반 아이들과 함께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

두 번째 수업에 다녀온 후,

미술학원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어머님 전화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느낌이 왔다. 아, 잘리는 건가. 거북맘 카페에서 보던 그건가...

쫄리는 마음으로 퇴근길에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였다.

지난 수업 때 선생님과 수업을 하는데 맑음이가 종이를 찢어버렸다고 하셨다. 작품을 만드는데 목적의식이 전혀 없다고 하셨다. 이 아이는 1:1 수업에 적합한 아이이니, 4시 대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맑음이와는 수업이 힘들 것 같으니, 아이들이 적은 3시나 5시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게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라고.

오케이, 읍소타임.

'선생님, 선생님께서 색안경 끼고 아이를 보실까 봐 말씀을 못 드렸는데, 맑음이가 느린 아이예요. 말도 늦게 트였고 소근육도 많이 약해요. 언어치료, 놀이치료 등 각종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미술학원 무리인 거 알면서도 맑음이가 몇 달 전부터 친구들 다니는데 자기도 가고 싶다고 여러 번 얘기를 해서, 제 입장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용기 내서 문 두드렸습니다. 다니던 태권도를 정리하고 여기로 옮겼습니다. 제가 5시에 맑음이를 데리러 올 수 있어서 3시 타임은 무리일 것 같고, 5시에는 언어치료가 있어서 4시 타임대가 아니면 어렵습니다. 미리 아이의 특징에 대해 말씀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울먹울먹 하며 얘기했더니(연기가 아니다, 나는 맑음이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직도 눈물이 난다) 선생님께서는 맑음이의 특징을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이렇게 어렵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다. 어머님이 얘기해 주셔서 거기에 맞춰서 수업을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다만 3개월 정도 작품이 안 나오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달라고 하셨다. (선생님, 저는 진짜 작품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주 2회 다니려고 했지만, 그건 무리일 것 같다고 하셨다. (하하..) 1주일에 한번 만나면서 차차 집중력이랑 소근육 힘을 늘려보자고 하셨다.


읍소한 덕(?)인지, 아니면 미술학원 원장선생님께서 진짜로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신 건지, 정말 감사하게도 일단 맑음이의 4시 수업은 유지가 되었다. 느린 아이라는 걸 오픈했을 때, '아, 그럼 저희 학원은 안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곳도 있겠지. 맑음이가 미술학원 하나는 잘 골랐다. 아, 그리고 '너 이제 종이 찢으면 미술학원 못 간다'라고 100번 얘기해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술학원에서 안 잘리기 위해서 감통에서 소근육 활동, 집에서 색칠연습 맹훈련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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