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애는 어차피 그대로니까
모아소아정신과에 3번째 진료를 다녀왔다.
사실 지난 번 이 병원에서 풀배터리 검사를 했을 때 내가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우리 아들은 이제 정상발달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문제 행동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마인드였을때여서, 맑음이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었다. 그 평가 결과를 갖고 계셔서 그런지 선생님께서도 맑음이를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시는 편이었다.
이번 진료는, 아이의 치료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그리고 지난번에 장애등록을 위한 검사 점수가 애매해서 등록을 못한 것도 있고 해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인사이트를 얻고자 온 것이었다. 역시 개인 병원답게 선생님은 부모 없이 맑음이를 혼자 데리고 찬찬히 살피셨고, 그 다음엔 내가 아이 없이 들어가서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6개월전에 왔을 때도 어머님은 장애등록 얘기를 하셨는데, 그때 맑음이는 모든 것이 경계선이라 장애등급은 받을 수가 없었고, 다만 발음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조음장애를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발음 이슈도 사라졌다. 모방학습이 잘 되는 편이고 사회성은 많이 떨어질지언정 그것이 자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ADHD 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쯤 ADHD 약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치료 및 사교육은 대근육, 소근육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고 소그룹이라 잘 구성되어 있는 것 같으니 아이가 좋아하면 다 시켜도 좋다고 하셨다.
진짜요 선생님? 진짜요?!!!! 맑음이가 자폐가 아니라고요?!! 이렇게 신선한 진단이라니!!
ADHD 그 따위 녀석이야 약 먹으면 되는거잖아요!!!
이 말은,
마치 예전에 첫째가 두돌 즈음 세브란스 천근아 교수님께 자폐 진단을 받고, 8세가 되어서 천근아 교수님께서 '이 아이는 자폐가 아니니 태권도 학원 같은데(?)나 보내며 일반적인 아이로 키워도 된다. 다만 ADHD가 있을 수 있으니 그건 로컬 소아정신과를 가봐라' 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가 세브란스 병원 내리막길에서 눈물을 흩뿌리며 노래를 부르며 초고속 질주를 하며 뛰어내려가고 싶었던 그 때의 그 마음과 데자뷰 되었다. 세상은 아름다워 보였고, 맑음이의 이상 발달을 감지한 돌 무렵 부터 조울증을 넘나들며 내 인생을 갈아넣은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듯한 감격이 몰려왔다.
그리고 지난 주,
2년 동안 같이 한 언어치료사와의 수업에서 아주 악평을 받았다. 너무 산만하고, 각성이 엄청나게 올라와서 자꾸 엉뚱한 소리만 해대고 웃긴 것만 하려고 하고, 집중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치료사는 맑음이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었는데 오늘 보니 각성조절이 안되면 지금하고 있는 어떤 치료도 소용이 없어보인다며 2년만에 처음으로 순도 100%의 부정적인 내용의 상담 내용을 들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또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빡 맞은 듯한 타격감이 몰려왔다. 돌아가는 차에서도 아이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 '지금 몇시에요? 형아 몇시에 와요? 아빠 몇시에 와요?'등과 같은 시간에 집착하는 말이 그 날 따라 무지하게 거슬렸다. 급기야 '엄마 지금 기분이 엄청 안 좋아서 니 말에 대답 안할거야'라고 선전포고까지 했으니, 남의 평가에 나는 이토록 예민하다.
그런데 이제, 첫째도 11년차, 둘째도 6년차면, 그런 평가에 잠깐 기분이 안 좋을 수는 있으나, 그게 아이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않는가. 다만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는 것은 나일뿐, 그리고 그로 인한 나의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천천히 성장해나갈 뿐이었다. 그러니 그런 평가에 흔들리는 것은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차에서만.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저번에 우리 아이에게 '이상한 애'라고 했던 동갑내기 여자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에게 반갑게 '안녕?'하고 인사했더니 아이는 엄마 뒤로 숨는다. 응 너도 이상해. 우리는 모두 어떤 측면에서 이상해. 그러니 코찔찔이 6살 동갑내기의 네가 우리 아이에게 '이상한 아이'라고 평가했던 것도 이제 그냥 웃어 넘긴다.
정말로 웃음이 났다. 분명 1주일 전 갔던 병원에 다녀 오는 길에는 비행기를 탔다가, 1주일 후 언어치료사의 평가에 바닥을 뚫고 내려가다니. 그리고 맑음이를 보았다. 첫째 세상이도 보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의 색깔대로 살아간다. 주변의 평가에 세차게 흔들리는 못난 엄마가 있을 뿐이었다. 껄껄껄 웃어버렸다. 오히려 내가 한뼘 성장한 기분이 들어서.
어쨌든 아이는 의사의 말대로 분명히 성장했다. 앞으로도 눈부시게 성장할 너와 나의 모습에, 괜히 뭉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