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S 55점의 의미
자폐 장애등록을 위해 지난주에 로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검사를 했고, 오늘 결과가 나왔다. 비장한 마음으로 병원에 갔고, 떨리는 마음으로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결과지를 쓱 보더니 '애매하니 등록 안될 수도 있어요'라고 한마디 내뱉고 종이만 보며 뭔가를 쓰기 바빴다. 그러고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무려 '장애등록'에 도전하기 위한 '결과지'를 받기 위해 의사를 만난 것은 10초.
결과지를 받아보니 자폐로 장애등록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GAS 점수가 55점이다.
다른 건 안 보이고 그것만 보인다. 아, 또 애매하네.
남편도 혀를 내두른다. 어쨌든 도움이 필요한데, 어쨌든 정상범주에 못 드는데 장애등록도 안된다니.
머리가 멍해졌다.
최근 보였던 친구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엉뚱한 말만 해대는 아이의 모습,
특수선생님과의 통화해서 '네, 요즘 맑음이 친구들이랑 안 놀고 자꾸 혼자서만 놀려고 해요. 이렇게 애매한 아이들이 나중에 참 힘들어지죠.'라는 그 말,
치료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이미 최대치로 끌어올렸다는 생각(물론 멈추진 않겠지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제 더 늦어지면 진! 짜!로! 등록이 안 되겠다는 생각.(주변 애매한 학령기 엄마들이 가장 땅 치고 후회하는 부분)
그런데 어쨌든 제자리이다.
50만 원을 주고 한 검사도,
20만 원을 주고 한 검사도,
결과는 '경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경계가, 내 수명을 끌어다 써서 내 아이의 치료에 전념한다 한들 과연 정상 범주로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그 의문점에 대한 대답이 No였기 때문에 또 이렇게 병원 문을 두드려 검사를 한 것이다. 내 아이에게, 어지간한 '정상'이어도 살기 힘든 이 사회에서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주고자 하는 바람에서 또 검사를 했지만 어쨌든 이번도 실패.
오늘 하루 그 결과지를 보며 앞으로 나는 엄마로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생각했다.
이제는 그냥 유치원 특수교육+통합교육에 아이를 맡겨놓고, 혹은 치료센터에 맡겨놓고 아이가 좋아지길 바랄 순 없다는 걸 알았다. 현재 보이는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파악해서 일상에서 치료적 접근을 해나가야 할 것 같다.
1. 두서없이 말하는 것에 대해
- 그날 유치원에 있었던 일이나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을 육하원칙에 맞게 말하는 연습을 매일 한다.
- 적절한 filler를 알려준다.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할 때는 '그런데'라든가 '내가 갑자기 생각난 건데' 같은 말을 쓸 수 있도록 매번 알려준다.
2. 역할놀이가 전혀 안 되는 것에 대해
- 매일 3분이라도 역할 놀이를 해본다. 태권도 사범님 역할을 해본다든가, 유치원 선생님 역할을 해본다든가, 생소하지 않은 역할을 해본다.
- 좋아하는 책 등장인물에 빙의해서 역할 놀이를 해본다.
3. 하나의 task를 끝까지 완수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에 대해
- 집에서 종이접기 쉬운 것 하나, 간단한 글라스데코 하나를 끝낼 때마다 스티커로 강화물을 준다.
- 모든 집안일에 맑음이를 개입시킨다. 요리할 때도, 빨래할 때도. 그 일련의 과정이 끝날 때까지 참여시켜서 성취감을 느끼도록 한다.
지금 학교도 말이 아닌 상황이라 퇴근길에 이미 하루치 에너지를 다 쓴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일과 가정을 분명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에서 학교 일로 투덜거리거나 생각하지 않기. 학교 일은 학교에서 마무리하기. 이제 곧 방학이니, 조금 더 힘을 내 봐야지.
그리고 장애등록은 일단은 잠시 접어두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