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늘에 앉아서 햇빛을 걷는 너를 바라보며

그 날, 장애진단을 받아야겠다고 도전했다.

by 메이

맑음이는 어느 날 부터인가 친구랑 놀지 않고 혼자 놀겠다고 선언했다.

기차에 꽂힌 맑음이는 집 앞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자신만의 기차 삼아 혼자 기차 소리를 내며 '이번 역은 당산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This stop is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 미끄럼틀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든말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맑음이는 세상의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한듯 해보였다.


중간에 개입해보려고 '저 타도 되나요?' '어디까지 가는 기차인가요?' 등등 질문을 던졌지만,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고, 나는 결국 개입을 포기하고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서 햇빛 아래 미끄럼틀에서 기차가 되어버린 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말이 엄청 늘었는데, 소통이 안된다. 나와 대화할때는 그나마 된다고 생각했는데 놀이상황에서는 0점이다. 고민이 된다며 자조모임 오픈채팅에 글을 남겼더니, '그게 장애 아니겠어요. 치료를 많이 받았다고 사회적 상호작용이 늘면 정상발달이겠죠' 라는 답변이 왔다.


아 맞다, 우리 애, ADOS 고득점자였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간 '경계'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받았던 검사결과들은 대체로 내가 체크했던 체크리스트에 의한 것 아니었던가. 사실 나는 맑음이의 양육이 만 3세 즈음과 비교해서 상당히 편해졌다는 사실에, 이것도 가능하고 저것도 가능하다고 멋대로 생각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아이는 정말로 작년까지만 해도 친구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반 아이들의 이름을 가장 먼저 외우며 유치원 생활을 매우 사랑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아이가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버린것인가.


생각해보니, 맑음이의 짧은 집중력과 부족한 놀이기술로는 6살 또래 사이에 낄 수 없었다. 놀이 유지시간이 짧고 관심사가 한정되다 보니, 놀이 상황에서 자꾸만 실패를 겪에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맑음이는 회피전략을 사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20개월부터 놀이치료를 했는데도, 지금은 무려 짝치료를 한지 8개월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아이는 이제 회피전략을 쓴다니. 맥이 빠지는 포인트다.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더 도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장애등록을 시도해보기로 결심했다. 내눈에만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 녀석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예측불가능한 사회로부터 어떤 보호막을 씌워줘야 할까, 결론은 장애등록이었다. 일단은 되든 안되든 시도는 해보자.

keyword
이전 16화혐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